칼럼/문영주 편집국장

20년만에 ‘농특위’ 이름 대신 ‘농어업위’로 바꿔졌는데 
수산계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고 그냥 그렇게 흘러 보내

변화가 생겼는데 반응 없다는 건 수산계 죽어 있다는 얘기
한국수산회 수협, 누구를 위한 단체인지 얘기 나올 수밖에

지난해  4월 20일 농어업위 대회의실에서 열린 미래신산업특별위원회 위원 위촉식과 첫 회의  장면.
지난해  4월 20일 농어업위 대회의실에서 열린 미래신산업특별위원회 위원 위촉식과 첫 회의  장면.

지난해 말 필자는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이하 농어업위)로부터 상을 받았다. 명목상 농어업·농어촌 발전에 기여했다는 이유에서다.  이 상은 필자가 특별히 잘해서 받은 상이 아니다. 농어업위가 수산전문지 기자단에 상 받을 사람을 추천해 달라고 하니까 고참인 나를 추천해 받은 상이다. 

 그런데 정작 연말에 상을 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고 나에게 상을 준 바로 ‘농어업위’다.   농어업위는 지난해 ‘농특위’라는 기존 약칭을 버리고 ‘농어업위’로 이름을 바꿨다. 그동안 약칭에 없던 ‘어업’이란 단어를 집어 넣어 준 것이다.   어쨌든 어업인이나 수산인으로서는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러나 수산계는 농어업위의 이런 업적을 외면했다. 상이라는 것은 이런 아름다운 활동이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주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수산계는 야박해서인지,  아니면  생각이 없어서인지 이들의 공적을 인정하지 않았다. 안타까운 일이다. 

 약칭 ‘농특위’서 ‘농어업위’로

 농어업·농어촌발전특별위원회는 농어업·농어촌의 지속적인 발전 방향을 협의하고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기 위해 2002년 만들어진 대통령 직속 기구다. 이 위원회는 설립 이후 줄곧 약칭을 ‘농특위’로 했다. 그런데 지난해 4월 중순 농어업위는 운영위원회를 열고 약칭을 ‘농특위’에서 ‘농어업위’로 변경했다. 비록 약칭이긴 하지만 오랫동안 사용한 정부 기구의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해관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위원회의 결단이 필요한 사항이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은  수산계가 문제를 제기해도 아직까지  해운항만청 시절 쓰던 해운산업연구원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도 농어업위는 어려운 결단을 선택했다. 

 농어업위가  그간  약칭으로 사용했던  ‘농특위’는 농수산부 외청인 수산청  때 많이 쓰던 말이다. 수산이 광의의 농업 속에 포함돼 있다며 어업을 배제한, 수산 홀대 관념이 배어 있는 용어다. 1996년 해양수산부가 설립된 지 6년 후 ‘농어업위’가 만들어졌다. 그런데도  해양수산부나  수산계는  약칭을 ‘농특위’로 사용하게 했다. 농수산부 시절 같으면  이해를 하겠는데 해양수산부가  엄면히 존재하고 있는데도  이런 약칭을 사용하게 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최소한 감사하는 마음은 가져야

 약칭은   존재감을 드러내는  효과적인  상징물이다.  그렇다면 수산계가 최소한 농어업위 위원장에게 감사패 정도는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이유야 어쨌든  농업 속에 파묻혀 있는 어업을 꺼내 문패를 붙여 줬으면 최소한 고맙다는 인사 정도는 해야 한다. 그게 사람의 도리다. 또 그것이 수산의 외연을 키우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수산계는 약칭을 개명한지 1년이 다 되지만 전혀 반응이 없다. 이것은 이번 약칭 개명에 수혜자가 없거나 수산계 세포가 죽어 있거나 둘 중 하나라고 볼  수밖에 없다.

수산업 발전과 어업인 권익 향상을 위해서는 외연을 확장하고 우군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때문에 수산 중심 단체인 한국수산회와 수협중앙회는 이런 일을 일부러라도  찾아서 해야 한다. 그들 자신들이 그들 단체를 수산중심 단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도 그들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아무 표정이  없다. 이런 상황이라면 솔직히 이 단체들의 존재 자체를 혹평해도 크게 잘못된 해석은 아닐 것 같다.

부모들은 자기 자식에게 조금이라도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머리를 조아리며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자기 자식의 미래를 위해서다. 그런데 한국수산회와 수협중앙회는 이렇게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가 아닌 모양이다. 그들이 누구를 위한 단체인지 다시 묻지 않을수 없는 이유다. 

 옛 사람들은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다. 하나의 행동 속에는 앞으로 있게 될 열 가지 행동을 유추해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 이 사건은 아주 단순하고 작은 사건이지만 이 사건 속에 비친 수산계의 모습은 너무 실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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