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신년 특별기획/ 10대 수산강국 이대로는 안 된다

한국, 어촌 소멸위기 파고에 가장 먼저 치명적인 영향 받게 될 것
이제 우리 국민들은 어촌을 규모가 아닌 ‘가치’로 바라 보아야

수산물 활용해 부가가치 높일 수 있는 어촌산업 영역 확장 필요
창업 희망하는 청년과 여성에 많은 관심과 맞춤형 지원 발굴해야

박상우 KMI 어촌연구부장
박상우 KMI 어촌연구부장

 우리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대전환의 시대(The era of Great Transformation)를 살아가고 있다. 산업화의 산물인 기후변화는 때때로 피해범위와 규모가 인간의 예측범위를 훌쩍 넘어서고 있다. 해수면 상승은 남태평양의 섬 국가와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먼저 위협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역시 시간의 문제일 뿐 이러한 위기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최근 어촌현장에서 만나는 어업인들은 그들의 일터와 삶터가 자연재해로부터 취약성이 더 커졌다고 한 목소리를 낸다. 또한, TV 방송에서는 바다의 수온 변화로 인해서 요즘 제철 수산물인 남해안의 대구도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반면에 희귀한 생김새와 알록달록 색상의 다양한 아열대 어종의 잦은 출현과 해파리가 급증하면서 어촌사회에 미치는 직·간접적인 피해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동해안 오징어 채낚기 어선들은 어획량이 급감하여 조업을 나가더라도 인건비와 유류비도 건지지 못하는 실정이다. 또한 인간이 만들어낸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인 플라스틱이 바다로 유입되어 미세한 알갱이로 부서지고, 환경적인 임계점(臨界點)을 넘어 생태계의 먹이사슬을 따라 다시 우리 인간한테 역습해 오고 있다. 이러한 역습은 바다뿐만 아니라 삶의 터전인 어촌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에 우리나라의 어가인구는 91%가 감소하여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5년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은 역대 최저치인 0.65명 수준으로 전망되고 있고, 세계적인 인구학자 데이비드 콜먼(David Coleman) 명예교수는 한국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1호 인구소멸국가’가 될 것이라 전망하여 큰 충격을 주었다. 도시와는 멀리 떨어진 섬과 어촌은 국토외곽이면서 동시에 해양영토의 시작점에 위치해 사회·경제적인 조건불리성과 높은 진입장벽으로 인해 귀어귀촌 규모는 매년 1,000명에 불구하고, 어촌사회의 초고령화로 인해서 평균 5,600명이 자연감소하여 앞으로 20년 후에는 전체 어촌의 87%가 소멸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나온 지 어느 덧 6년이 지났다. 해양수산부와 지자체가 어촌소멸 방지를 위해 매년 약 1조원 내외의 규모로 투자하고 있지만 지금의 추세가 계속 진행된다면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 어촌의 모습은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서나 찾아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소멸위기의 어촌 재건을 위한 시작.

 우리나라의 인구구조 변화가 인구절벽(Demographic Cliff)을 보이면서 국가적 위기로 인식되고 있으며,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을 제정하여 선제적인 대응에 나서고는 있다. 입지적 조건불리성에 노출된 국토외곽의 어촌은 소멸위기라는 파고에 가장 먼저 치명적인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사실 어촌의 인구와 경제규모는 전체의 1% 수준에 불과하여 혹자는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어촌사회의 붕괴는 세계에서 가장 수산물을 많이 소비하고 사랑하는 우리 국민들의 식량안보를 지켜낼 수 없다. 이미 생소한 이름의 국가로부터 수입된 수산물이 우리식탁에 오르고 있다. 수산물 자급률은 70% 내외의 수준을 유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어업활동이 이루어지는 우리바다는 국토의 4.4배에 달한다. 드넓은 바다에서는 수산자원뿐만 아니라 군사·안보 등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이 이 시간에도 이루어지고 있다. 어촌소멸은 사실상 섬이나 다름이 없는 우리의 현실에서 곧 바다를 포기하는 일이다. 우리 국민들이 어촌을 규모가 아닌 ‘가치’로 바라보아야 하는 대목이다.

 어촌의 낙후된 인프라 개선과 귀어귀촌 등 정부의 소멸방지를 위한 대책에도 불구하고 관련된 통계상으로는 지속적으로 나빠지고 있다. 재정투자 노력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어촌현장에서 국민들이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성과에 주목해야 한다. 즉, 어촌 소멸에 선제적이고 실효적인 대책이 될 수 있도록 관련정책 전반에 재구조화가 필요하며, 이는 어촌 재건을 위한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 본고에서는 어촌 재건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으로 사람, 공간, 기술에 한정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사람에 투자하는 정책으로 전환.

 어업은 거친 바다위에서 이루어지다 보니 전통적으로 남성, 노동중심의 산업이다. 안전사고가 많고 그로인해 목숨을 잃는 경우도 많아 예전에는 여성이 배 위에 오르는 것 자체가 금기시 되었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고령화로 인해 연안어업은 대게 부부조업, 근해어업과 양식어업은 외국인종사자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러한 대응 방식도 자연 감소, 인건비 상승, 무단 이탈 등으로 지속되기 어려워 보인다. 보다 궁극적으로는 1차 어업생산 영역만으로는 어촌사회가 유지되기 어렵다. 

 수산물을 활용하여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가공(제조업)과 유통, 서비스업 영역 등 어촌산업의 영역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사람이 그 중심에 있다. 지금껏 정부정책은 어촌계를 중심으로 역량강화와 관련 인프라를 지원하고 있다. 수산자원의 접근성과 결속력 등 어촌사회의 특성으로 볼 때 방향성은 맞지만 큰 전환의 계기를 갖기는 어려워 보인다.

 수산물 생산과 연계된 융복합형 창업을 희망하는 청년과 여성에 보다 많은 관심과 맞춤형 지원을 발굴해야 한다. 낙후된 어촌 정주여건을 개선하고,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재정투자 역시 중요하다. 다만 소외되었던 청년과 여성의 미래 가치에 과감한 투자 확대와 사후관리를 강화해야 한다. 어촌에 젊은 청년과 여성의 정착 없이 미래를 논의하기 어렵다. 따라서 다양한 채널을 통해 창의적인 사업계획과 모델을 발굴하고, 창업자금 확대, 금리 및 상환제도 개선, 어선·어장 임대사업 확대, 교육·컨설팅 내실화, 여성어업인 로컬 블루푸드 육성 등이 예시가 될 수 있다.

 어업현장에서 국내 종사자의 기피로 부족한 일손은 외국인종사가(고용허가제, 어선원제)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특히, 성어기에 한정하여 계절근로자(E-8)를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외국인종사자 고용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어업의 특성상 노동기술의 숙련성과 공동체를 기반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일시적인 고용제가 아닌 궁극적인 어촌형 이민제도 도입이 필요하다. 해양수산부와 수협중앙회가 수산업의 부족한 인력을 공급하는 정책이 아닌 어촌사회의 미래 지속가능성을 위한 지역정책으로 인식을 전환해야 하는 지점이다. 우리 사회는 단일민족에 대한 자부심이 높다. 하지만 그 자부심이 어촌의 공익적 기능과 가치보다 크지는 않을 것이다. 어촌 소멸의 시간이 20년 정도 남아있다고 본다. 이민제도 도입을 위한 사회적인 공론화와 이행을 위한 관련 법제도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 

 ◆어촌 공간 재구조화 정책으로 전환.

 어촌은 일반적으로 마을어장-어항-배후마을의 형태로 구성되는 공간적 구조이다. 경제, 일자리, 삶의 질 모두 이들 공간에서 상호 복잡하게 작용하며, 비례적인 관계를 갖는다. 즉, 어장여건이 좋은 곳에 어선(또는 어장관리선) 세력, 어항과 그 배후마을의 규모를 결정짓는다. 하지만 어촌개발은 마을어장-어항개발-어촌개발(정주여건 개선)이 각기 다른 주체와 사업방식으로 이루어져 마치 미완의 그림과도 같다. 해양수산부 사무기준으로 볼 때 마을어장(어촌양식정책과, 양식산업과), 어항개발(어촌어항과), 어촌개발(어촌어항재생과, 소득복지과)로 구분되며, 분절적인 구조와 사업방식으로 추진되기 때문에 많은 재정투입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제한적이다. 어촌소멸 대응과 활력 제고를 위한 공간계획을 지자체(광역, 시군구)가 직접 지역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선제적으로 수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방향성과 단계별 로드맵에 맞춰 해양수산부 및 타 부처의 재정사업을 매칭시켜 추진할 수 있도록 어장-어항-어촌개발의 종합적인 재정비가 필요하다. 아울러 어촌소멸의 시급성과 중요성을 고려해 볼 때 정책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 기능으로 해양수산부 어촌정책국을 신설하는 등 조직개편도 필요하다.

 한편, 재정투자를 마중물로 적극적인 민간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가칭)어촌형 기회발전특구(ODZ : Opportunity Development Zone) 도입이 필요하다. 거점어촌의 생태계 플랫폼을 조성하고, 소멸위기의 어촌을 해결하는 대안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어촌형 기회발전특구는 제조업(수산기자제, 해양레저), 스마트 양식클러스터, 수산식품 거점단지, 관광단지 등 기능을 도입시키고, 조세감면, 규제완화 등 적극적인 인센티브를 통해 창업과 이주기업을 유치하여 양질의 일자리와 소득원을 창출하는 전략이다. 거점어촌과 주변지역의 마을단위가 공간·기능 간 연계로 재정투입을 효율화하고 성과를 높이는 방식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수요자 기반의 기술 투자 정책으로 전환.

 인류가 발전해 온 수만 년의 역사보다 250년 전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태동된 이후 우리의 삶은 더 풍요롭고 편리해졌다. 물론 개인적인 삶의 가치평가는 다를 수 있다. 어촌현장은 선별기, 인양기, 가공설비 등 기계화, 자동화가 도입되었다. 하지만 어촌사회의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기술도입은 부진하다. 일부 문제해결형 사회혁신 실험으로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취약계층인 고령어업인, 귀어인, 여성어업인, 외국인종사자에게 노출된 현장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들이 나타나고 있다. 드론과 AI 딥러닝 기술을 접목하여 낙지 숨구멍(부럿)에 개체 유무의 정확성을 높여 맨손어업의 노동강도를 줄이고 정확한 자원량 평가로 지속가능한 어업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여성, 고령어업인이 주로 활동하는 갯벌어업은 바지락 채취 이후 집산지까지 먼 거리 이동으로 고된 작업이며, 안전사고에도 노출되어 있다. 수산물 운반드론과 전자조업관리(품목, 중량, 가격)를 실증한 사례도 있다. 

 어촌현장 문제를 해결하는 스마트 어촌정책의 확대가 필요하다. 무인, 원격제어가 가능한 스마트 양식장 투자에서부터 작은 기술개발과 기 개발된 기술을 현장에 적용하는 방식으로 생산성 향상, 안전성 제고, 생활편의 등 누적된 현장문제를 해결하는 단계까지 정책영역과 투자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 공급자 기반의 연구개발이 아닌 수요자 기반의 리빙랩 도입과 문제해결형 연구개발(R&SD)로 접근되어야 한다.

 ◆마치면서

 지난 해 9월 적도부터 북극 그린란드에 이르기까지 33개국, 56개 관련기관들이 참여하는 세계어촌대회가 창설되었다. 기후위기, 빈곤, 자연재해, 인구감소 등 전 세계 어촌에 직면한 위기와 공동 대응을 위한 협력·연대의 필요성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필자가 세계어촌대회를 준비하면서 왜 대한민국에서 어촌을 매개로 하는 글로벌 논의 플랫폼을 구축하려고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모범답안을 다시 복기해 본다면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산물을 소비하지만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소멸될 국가이다. 수산강국 10위의 대한민국은 어쩌다보니 전 세계가 이 위기상황을 어떻게 대응하고 극복하는지 관찰하는 대상이 되었다. 어촌문제 해결을 위한 대한민국 해양수산인의 내발적 노력과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통해서 ‘한국형 Blue Transformation’으로 ‘사람’, ‘공간’, ‘기술’에 대한 전환과 다양한 정책성과를 전 세계와 공유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2024년 갑진년(甲辰年)이 대한민국 어촌, 더 나아가 세계 어촌이 함께 협력·연대를 통해 발전해 나가는 원년이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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