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칼럼/문영주 편집국장

사각지대 놔두려면 식품연구실 왜 만들었나
실험 중앙회 직원 식당서 사람 없는 시간에 조리하고
제품 생명력 대부분 1년 미만…“이런데 경쟁 갖출 수 있나”

내년 중앙회 사업예산 12조2,368억원(예상) 중 3.5억만 배정
'수산물 부가가치 높여 어업인 소득 증대' 말만 번지르르

지난 2일  노동진 수협회장 등  수협중앙회  임직원들이   수산식품연구실에세 개발한  소스로 조리한 음식을 들고 있는 모습
지난 2일  노동진 수협회장 등  수협중앙회  임직원들이   수산식품연구실에세 개발한  소스로 조리한 음식을 들고 있는 모습

 수협중앙회는 지난 2일 수산물 소비 저변 확대를 위해 수산 가공품을 새롭게 개발하고 본부 지하 바다회상에서 시식회를 개최했다는 보도자료를 언론에 배포했다.

 수협은 이 자료에서 수산물을 더욱 맛있고 편리하게 조리할 수 있도록 △모둠해물 △양념새꼬막 △매운탕소스 △볶음조림소스 △함초흑임자양갱을 신제품 5종을 개발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들 제품은 급식시장을 겨냥해 개발한 것으로 학교·기업 등에 급식 식재료로 공급되도록 만든 것이라는 부연 설명도 했다.

 수협중앙회 관계자는 “수산식품도 최신 트렌드에 맞춰 맛있으면서도 간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개발돼야 한다”며 “앞으로도 남녀노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수산물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는 코멘트도 달았다.

 그리고 이날 시식회에는 노동진 수협중앙회장, 김기성 대표이사, 강신숙 수협은행장 등 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신제품을 활용한 해물탕, 해물찜, 꼬막비빔밥, 해물전 요리와 함초흑임자양갱을 후식으로 시식했다는 내용도 곁들였다.

 누가 들어도 수협중앙회가 근사한 수산식품연구실을 가지고 신제품을 개발해 임원들과 시식회를 한 모양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보도자료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이번 신제품을 개발한 수협중앙회 수산식품연구실은 2014년 수협중앙회 경제 소속으로 만들어진 팀이다. 당시 인원은 5명. 수산물 소비 확대와 어업인들이 잡아 온 수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여 어업인 소득을 제고하기 위해서다.

그러다가 2020년 임준택 회장 취임 후 실(室)로 규모가 커졌다. 현재 정원은 18명으로 식품안전을 담당하는 직원이 10명, 식품연구개발 쪽에 8명(상품 디자인 개발 2명, 식품연구개발 6명)이 있다. 수협중앙회 전체 직원 1,225명 중 1.4%가 여기에 소속돼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 연구실은  수협중앙회 본부 직제 26개 (17부 1원 7실 1국 1단) 중 규모가 적은 말단 부서 중 하나다. 

 예산도 올해 식품연구개발비가 3억 5,000만원. 전체 사업규모(9조 7,024억원)의 몇천분의 1도 안 된다.  내년 예산도 마찬가지다.  수협중앙회가 편성한 내년도 예산안을 보면 내년에도 역시 올해와 마찬가지로 3억 5,000만원이 편성돼 있다. 내년 사업규모가 12조 2,368억원(예상)이니까 기구나 예산으로 보면 이 조직은  수산연구실이란  이름만 근사하지, 수협의 관심에서  멀리  벗어난 조직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 연구실이 지금까지 개발한 제품은 70종. 2015년 9월 ‘요리를 9해조(분말)’ 제품을 시작으로 지난 10월 ‘수협고추장구이 소스’까지 매년 평균 8~9개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한 제품이 개발되기까지 아무리 짧아도 4~5개월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할 때 식품 연구 개발 인원 6명이 이렇게 많은 제품을 출시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수산식품 제조업체 임원은 “민간기업은 한 제품을 론칭(출시)하기까지 적어도 6개월 이상 소요되는데 개발인원 4~5명이 1년에 8개 정도 제품을 내 놓는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게다가 수산식품연구실은 마땅한 조리 실험실이 없다. 인천물류센터 옆에 20평 가량 규모의 실험실이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 조리 실험은 송파구 신천동에 있는 수협중앙회 구내 식당에서 한다. 직원들 식사가 끝나고 사람이 없을 때 조리 시설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수협이란 거대 조직이 식품을 개발하면서 이렇게  열악한 곳에서 실험을 한다는  것을 외부에서 안다면  어떤 생각을 할 까 궁금하다.  수산식품연구실 관계자는 “이번에 개발한 5종의 신제품도 여기서 조리 실험을 거쳐 개발했다”고 했다.

 이런 열악한 환경은 결국 제품의 경쟁력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10년 가까이 여기서 개발한 제품이  70종. 하지만  신라면, 새우깡, 동원참치처럼 뭔가 떠오르는 대표 브랜드가  하나도 없다.

그나마 판매가 되고 이름이 알려진 게 지난 2016년 개발한 ‘하이르와 해삼마스 크팩 2종’과 2017년 개발한 ‘수협모듬어묵’ 정도다. ‘하이르와 해삼마스크팩 2종’은 지금까지 13억 9,500만원, ‘수협모듬어묵’은 11억 3,600만원 어치가 팔렸다.  바다마트나 수협 홈쇼핑 등 수협이 직영하는 판매장소를 가지고 있는데도 7~8년 동안 이 정도뿐이 팔리지 않았다면 제품의 시장 경쟁력, 판로 등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2017년 개발한 ‘간편생선구이(고등어)’, 2018년 개발한 ‘천연 해물팩(군급식)’, 2019년 개발한 ‘(가칭)양념게장’, 그리고 지난해 개발한 ‘수협 녹차품은 참치, 가자미’ 등 15종은 제품을 개발했으나  매출 실적이 하나도 없다. 시중에 내놓지 못하고 생산을 접었거나 아무도 사지 않아 생산을 중단했다는 얘기다. 2019년 개발한 ‘민어밀키트 2종’도  시중에 내 놨지만 500만원 어치만 팔고 더 이상 생산을 하지 않았다. 구매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2022년 8월에 개발한 ‘별해별미 양갱이 시리즈(해삼·홍삼 양갱이. 감태·감귤 양갱이. 다시마·말차 양갱이 등 3종)는 2억 7,500만원 어치가 팔렸다.  그러나 이 중 70% 가량은 수협중앙회 임직원들이 선물로 사갔다. 그러니까 일반 소비자가 사가는 게 아니고 내부 직원들 거래로 대부분 팔았다는 얘기다.

수산식품연구실에서는 “이 양갱이는 한개 판매 가격이 900원이면 적당하다”고 했다. 그러나 이 제품은 한개 판매가격이1,700원 가량 된다. 굳이 제품의 겉포장에 비용을 들일 필요가 없는 저가품인데도 겉 포장을 근사하게 만들기 위해 원가를 배 이상 올렸기 때문이다. 다른 회사의 양갱이 하나가 1,000원도 안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장에 내 놔 경쟁을 하겠다는 건지, 그냥 흉내만 내려고 한 건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위에서  누군가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상품 개발도  마찬가지다.   수산식품연구실은 신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상품개발협의회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수산식품연구실 팀장이 협의회장이 되고 판매부서 등이 참여하고 있다. 부장들이 와서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해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마당에 팀장들에게 맡겨 놓고 있다.  솔직히  이 조직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얘기다. 

이미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에 뛰어들려면 가격 경쟁력이 있거나 질적 차이가 확연해야 한다. 그래야 소비자 시선과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제품을 만들어도 피드백이 제대로 안 되고 판로가 마땅치 않다면 제품의 생명은 지속될 수 없다. 현재  이 조직은  예산은 지도 쪽에서 받고, 소속은 경제이사로 돼 있다.  조직을 이렇게 관리하는 것은  이 조직에  아무런  관심도 없고 방치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럼에도 수협중앙회는 지난  2일  근사한 사진을 곁들인  보도자료를 냈다.   이렇게 조직을 사각지대에  두고  그런  보도자료를 내는  뻔뻔함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란 혹평을 면할 길이 없다.  민간 식품업체 관계자들은 “이제라도 수협이  혁신적인 수산식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중앙회 임원들의 관심과 지원이 절대 필요하다”며 “현재와 같은 환경에서 좋은 제품을 기대한다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나 다를 바 없다”고 했다.

 수산물 소비를 확대하고, 어업인 소득 증대를 위해서는 수산식품연구실 기능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은 더이상 재론할 필요가 없다.  수협은  이제라도  수산식품연구실이 국민들이 좋아하는 대표 브랜드를 만들어,  그 브랜드로 다른  제품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도록  수산식품연구실 기능을 재편해야 한다.  그래야  말로만이  아니라  수협이   목표한  수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어업인 소득을 제고 시킬 수 있다.  

내년 수협중앙회 사업예산 12조 2,368억원 중 수산식품연구실에 배정된 3억 5,000만원은 지금 수산식품연구실의  자화상이다.  이 자화상을 그대로 유지할 건지, 새로운  동력을 만들건지 수협의  선택이 필요해 보인다. . <문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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