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동 칼럼/문영주 편집국장

유년기 힘든 시간 보내며 살아남기 위해 ‘미래’ 접어두고
지금은 이상기후·신냉전 속 챗GPT와 신문 경쟁 시대 로
새 환경서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수산·어업인 대변할 터

문영주 편집국장
문영주 편집국장

수산신문 창간 20년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창간 20년을 맞으면서 떠 오른 상념이다. 사람마다 세월의 무게는 다르다. 어떤 사람은 좋은 환경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20년을 보냈을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등에 진 감당할 수 없는 무게 때문에 발을  한발 한발 떼기도 어려웠을 수 있다. 

 수산신문은 어느 쪽일까. 그 간 독자들이 지켜본 대로 수산신문은 태어나자마자 고통스러운 성장기를 보냈다. 수산신문이 걸어온 20년 중 1/3, 그것도 창간 이듬해부터 7년간 수협중앙회란 거대 조직과 갈등을 겪으면서 수산신문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였다. 곧게 무럭무럭 자라야 할 어린 시절을 정말 참혹하게 보냈다. 그렇다 보니 창간 때 내건 ‘힘 있는 신문, 부끄럽지 않은 신문’이란 사시는 찢어진 깃발과 같았다. 세찬 비바람을 맞아 너덜너덜하는 흉물스런 모습 그대로였다. 언론의 본령을 지키겠다고, 호기를 부리며 수협중앙회 회유를 거역해 치른 혹독한 대가였다. 

 그러나 지금 보면 역설적으로 그때가 수산신문의 전성기가 아니었던가 싶다. 두 눈을 크게 뜨고 독자들이 알아야 할 내용을 거침없이 써 내려갔던 시기가 바로 그때였기 때문이다. 수협중앙회 지배구조, 방만 경영, 도덕적 해이, 외유, ICA수산위원장 취임까지 수산신문은 있는 대로 독자들에게 사실을 전했다. 기사를 쓰고 나면 뿌듯함이, 파장에 대한 설렘이 가슴에 남아 있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수산신문은 어떤가. 정부에서 주는, 수협에서, 또는 수산단체나 기관에서 내보내는 기사를 그저 배달하는 배달부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기사를 쓰고 나면 느끼던 설렘은커녕 이렇게 신문을 만들어야 하는지  회의가  머리 속에 떠나지 않고  있다. 

 지금 수산업은 사상 최악의 시기를 맞고 있다. 연근해어선어업은 자원감소로 생산량이 100만톤은 고사하고 이제 90만톤도 위협받는 시대가 됐다. 더더욱 문제는 이런 하향 추세가 어디에서 멈출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또 어촌은 일할 사람이 없고 고령화로 머잖아 사람이 살지 않는 어촌이 수없이 늘어날 거라는 불길한 예측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어촌소멸이라는 얘기가 유령처럼 떠도는데도 전혀 이상하게 느끼지 않는 세상이 돼 버린 것이다.

이보다 더 무서운 것이 이상기후다.  이상기후는 현재로선 우리가 제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해양환경이 변하면서 지금 한반도 수역은 과거의 우리 바다가 아니다. 제주도 방어, 동해안 오징어 등은 엑소더스처럼 우리 해역을 떠나고 있고 대신 남방 참치가, 정어리떼가, 열대어가 몰려오고 있다고 한다. 물고기들의 해역 이동이 앞으로 어떤 환경을 만들지 예측이 쉽지 않은, 그야말로 불확실성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런 시기에 수산신문은 어디에 있었을까. 솔직히 우리 자신도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는 판국이니 더는 얘기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지속가능한 수산업을 방해하는 것들에 대해 취재를 강화하고, 수산의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역할을 해야 할 신문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심각한 얘기다. 최소한 수산전문지라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방류 등 주요 현안에 대해서도 중심을 잡고 바른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수산신문은 어느 등에 숨었는지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이럴 바엔 쳇GPT로부터 정보를 얻는 게 더 낫다는 혹독한 얘기를 들어도 더는 할 말이 없게 됐다.  

 이런 의미에서 수산신문의 창간 20년의 무게는  이제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 창간 20년 무게는 창간한 지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는 게 핵심이 아니다. 수산신문이 창간 20년 동안 수산업을 위해, 어업인을 위해 과연 어떤 일을 했는지  이제 정당한 평가를 해야 한다. 수산신문이 이유야 어떻든 ‘부끄러운 20년’을 보냈다면 지금부터라도 다시  창간하는 마음으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수산신문은  20년이란 세월의 무게를 버리고  이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창간 20주년을 맞는 솔직한 고백이고 성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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