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지쳤어요. 나니까 버텼지... 다른 회사면 벌써 문 닫았을 것”

20억 들여 지은 HACCP 시설 구청서 어느 날 갑자기 불법이라고 철거 명령
가설건축물 신고필증까지 받았는데 민원 발생 이유로 2달 만에 처분 번복
“냉동시설, 최고급 훈제시설 등 20억원 들여 만든 시설 모두 무용지물 됐어요”

“법대로 했고 법대로 한다”며 냉동공장과 유진마트에 플래카드 걸어 놔
가공공장 5~6개 지어 수도권에 국내 최대 가공공장 만들겠다는 꿈 산산조각
구청 이제 와서 허가해 준다고 다시 하라 하지만 철거 다 한 지금 의미 없어

장공순 유진수산 회장
장공순 유진수산 회장

 “이젠 지쳤어요. 5년간이나 싸웠어요. 나니까 버텼지, 조그만 회사가 구청의 이런 부당한 처분과 싸웠다면 벌써 문을 닫았을 것입니다”

 지난 4일 인천 계양구 작전동 유진수산 냉동창고에서 만난 유진수산 장공순(79)회장은 유통가 전설답지 않게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20년 동안 사용해온 시설을 어느 날 갑자기 구청에서 나와 위반건축물이라고 뜯으라고 합니다. 구청서 매년 문제가 있는지 체크 했어요. 그때  지적만 했어도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거 아닙니까. 20년 동안 꾸준히 시설 투자를 하고 롯데마트, 홈쇼핑 등 수많은 거래처에 납품을 하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시설을 철거하라고 하면 문 닫으라는 얘기 아닌가요. 이런 법이 있습니까” 그러면서 분이 풀리지 않은 듯 “이게 나라냐”고 했다. 고용이 최고의 복지인데 고용을 늘려야 할 구청이 직원을 거리로 내모는 행정처분을 하고, 기업인의 의욕을 꺾는 이런 행태가 나라가 할 짓이냐는 얘기다. 장 회장은 이런 일이 있기 전에는 250명 가까운 직원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50명도 안 된다고 했다. 이 시설을 중심에 두고 5~6개의 시설을 더 만들어 수도권에 수산물 유통가공의 새 역사를 만들어 보고 싶었는데 그  의욕을 송두리째 꺾어 버렸다고도 했다. 

 장 회장은 60년간 수산물 유통이란 외길만 걸어온 우리나라 수산물 유통의 산증인이다. 1960년대, 10대의 어린 나이에 서울 동대문에 있는 수산물 유통 시장에 뛰어들어 일을 배운 뒤 20대 중반 회사를 차린다. 그리고 삼청각, 오지남 등 당시 내로라하는 요정뿐만 아니라 청와대, 신라호텔 등에 납품을 시작한다. 수산물 유통업자가 이런 걸 납품한 건 그가 처음. 그가 가는 길은 모두 수산물 유통의 새역사가 됐다. 지금부터 40년 전인 1980년대, 우리나라 최초로 참치를 급랭시킬 수 있는 영하 60도 가까운 초저온 냉동창고를 본격 가동시킨 것도 장 회장이다. 옛날 사람들이 참치하면 ‘유진참치’를 먼저 떠올리는 건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그는 이후 이마트나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를 비롯해 호텔 등 많은 거래처에 납품을 하고 직영점을 만들어 운영하는 등 수산물 유통사업을 확장한다. 한해 그가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사는 물건이 100억원이 넘을 때도 있었다니까 얼마나 왕성한 활동을 했는지는 쉽게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런 그가 시련을 맞은 건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 사업이 시작되면서다. 그는 2016년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 사업이 시작되자 노량진 작업장을 현재 유진마트가 있는 인천 계양구 서운동으로 이전했다. 현대화 공사로 노량진시장에서 작업을 할 수 없어서다. 그리고 2018년 유진마트 내에 20억원 가까운 자금을 투입해 식품의 안전성을 확보하고 보증하는 HACCP(식품위해요소 중점 관리 기준)시설을 만든다. 관할구청으로부터 ‘법대로’ 가설건축물 신고필증을 받은 건 물론이다. 그러나 관할구청은 신고필증을 발급한 지 2개월도 안 되는 2018년 3월, 민원 발생을 이유로 이를 뒤집고 시정명령을 내린다. 이 때문에 HACCP설비와 냉동시설, 최고급 훈제시설 등 20여억원을 들여 만든 시설은 무용지물이 됐다. 

 이후 인근(계양구 작전동)에 있는 냉동창고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2021년 8월, 매년 건축물 실사를 하면서 아무 문제가 없다던 관할구청이 어느 날 갑자기 20년간 사용하던 건축물에 문제가 있다며 일부 시설 철거를 명령한 것이다. 시설물을 철거하지 않으면 강제 이행금을 부과한다는 구청의 압박은 계속됐고 결국 장 회장은 올해 초 시설물 일부를 철거했다. 이 때문에 한때 100억원 가까운 물건이 저장돼 있던 냉동창고와 수산물 작업장이 쑥대밭이 된 건 물론이다. 그리고 그동안 납품을 해 온 이마트, 롯데마트, 홈쇼핑 등에 9월부터 납품을 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사업을 한 후 최악의 사태였다.  하지만 장 회장은 인내를 가지고  구청에 대응했다. 

 서운동 작업장에 대해서는 신고필증 교부 등 관할구청의 처분만을 믿고 수산물 가공 작업장을 설치했는데 행정처분을 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시정명령 재고를 호소했다. 또 작전동 냉동창고와 관련해서는 2007년 수산물 가공 작업장을 신축한 이후 15년간 행정처분을 받아본 사실이 없었다며 행정처분의 재고를 요청했다. 그러나 상황은 하나도 개선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장 회장은  “유진수산은 법대로 했다. 그리고 법대로 한다”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공장에도 걸고 마트에도 걸었다. 또 “40년간 지역사회에 봉사하며 법대로, 법을 준수하면 살아온 기업인에게 공무원이 이래도 되느냐”고 써 붙였다. ‘100만인 초밥 먹기운동’을 벌이며 지역사회를 위해 노력했던 사진 등도 벽에 붙여 놓았다. 40년간 ‘법대로’ 이 지역에서 냉동창고를 운영하고 유진마트를 만들어 운영해왔는데 돌아온 것은 차가운 냉대뿐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다. 

 장 회장은 “내가 이러는 것은 경제적 손실 때문만이 아니다. 관할구청의 부당한 행정처분이 멀쩡한 기업을 이렇게 망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기  때문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고 했다. “다른 지자체나 구청에서는 사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게 있으면 도와 주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계양구청은 정작 공장을 세우고 지역 발전에 기여하는 업체와 종업원들을 파산시키거나 거리로 내몰고 있습니다. 관할구청이 이렇게 한다면 어떤 기업이 여기 와서 사업을 하겠습니까. 요즘은 이런 대접을 받으려고 여기에 공장을 세웠나 하는 자괴감이 듭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요즈음도 새벽 1시경이면 어김없이 노량진수산시장 활어 경매장에 간다고 했다. 새벽이면 버릇처럼 깨는 데다 60년 동안 평생의 업으로 생각한 유통업을 막상 손에서 떼기가 쉽지 않아서다. 그는 “노량진수산시장 새벽은 나의 일상‘이라고 했다. 한겨울, 한강변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을 맞으며 한평생 노량진수산지장 경매장을 지켰던 老 유통인의 뇌리에 잠시 상념이 스쳐 가는 모양이다.

게다가 아직까진 롯데마트 등에서 계속 주문이 들어오고 있다고 했다. 그가 최근 시장에 가서 많이 산 게 국내산 참치, 연어, 숭어, 홍어 등이다. 그는 이날 새벽에도 그는 숭어와 홍어 등을 샀다고 했다. “롯데마트에서 숭어를 하루 200kg(살로만)씩 매일 납품해 달라고 해요. 그러나 물량도 없고 작업장이 이러다 보니 물건을 댈 수가 없어요. 살로만 200kg이면 원어로는 2톤 물량인데 작업장이 이렇게 됐는데 이것을 어떻게 처리합니까” 

 그러면서 “9월까지만 유통가공을 하고 앞으로 유통가공은 손을 떼겠다”고 했다. 잠실 석천호수 인근에 있는 식당 호림과 계양구에 있는 유진마트만 하고 홈쇼핑이나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유통 가공업은 이제 안 하겠다고 했다. 법은 사람을 위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계양구청 행정처분을 보면 법은 법을 위해 있는 것 같다.<문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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