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은 인간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
수협 위해 같은 날 동반퇴진 모습 보여줘야

문영주 편집국장
문영주 편집국장

 내가 좋아하는 말 중 하나가 무신불립(無信不立)이다. 논어에 나오는 말로 공자는 “믿음이 없이는 아무 것도 설수 없다”고 했다. 모든 인간 관계에서 가장 기본이 되고 중요한 게 신뢰라는 얘기다. 

 그러나 지금 수협은 이런 신뢰가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수협중앙회는 지난해 9월 노량진수산시장 개발과 관련해 임준택 회장과 홍진근 대표이사 간 갈등이 극에 달하면서 확약서라는 것을 만들었다. 이 문건은 “임준택 회장이 퇴임할 때 함께 그만 두겠다”는, 임 회장과 홍 대표가 동반 퇴진키로 하는 약속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특히 이 문건은 이사들의 중재로 대표이사 해임을 위한 총회 소집이 무산되면서 홍 대표가 자필 서명으로 별도 작성해 제출한 문건이다.  

 그러나 지난 4일 대표이사 후임 선출 절차 마련을 위한 이사회 개최를 하루 앞두고 홍 대표는 사퇴 확약서를 철회한다는 공문을 이사회에 제출했다. 대표이사가 이사회에서 이사들 앞에서 발언하고 확약한 문건을 없었던 일로 하겠다는 얘기다. 내용이야 어떻든 한마디로 웃기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임기가 많이 남아 있는 상황(8월 임기 만료)에서 후임 선출 절차를 밟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 사표는 후임 회장에게 제출하겠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임 회장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조직의 최고 지도자는 각자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사이비 교주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러나 임 회장은 다름을 인정하지 않거나 공적인 일을 감정적으로 처리한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그렇더라도 이번 홍 대표의 확약서 파기는 정당화되기 쉽지 않다. 공적인 자리에서 한 약속인데다 내가 약속을 파기함으로써 일어날 소모적 논쟁을 생각한다면 그동안 몸담았던 조직의 대표이사로써 해야 할 행동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고 조직이 싫으면 그 조직을 떠나는 게 본인을 위해서나 조직을 위해서나 나은 결정이다. 내가 남아 있는 게 조직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이번 확약서 철회 이유는 이유야 어쨌든 구차한 변명으로 들릴 수 있다. 또 차기 회장에게 사표를 제출하는 거나 지금 임 회장 뜻대로 나가는 거나 조직 발전이나 자기 신상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혹여 차기 회장에게 사표를 제출하겠다는 생각이 있었다면 지난해 이사회 중재 당시 자신의 뜻을 관철시켰어야 했다. 수협의 중요한 의사 결정기구인 이사회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뒤늦게 어떤 이유를 들어 약속을 파기하는 것은 정당한 행위가 아니다. 물론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막장드라마 같은 이런 모습이 난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는 짓이 괘씸하다고 하루라도 임회장 보다 늦게 나가겠다고 생각하거나, 적당히 넘어가 임기 때까지 가겠다는 느낌을 주는 행동을 하는 건 오히려 홍 대표가 손해보는 일이다. 임기가 남아 있는 회장 같으면 나가면서 회장 리더십에 타격을 줄 수 있지만 이제 나가는 회장한테 그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니냐는 여론이 더 많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임 회장은 일부 비난을 무릅쓰고 홍 대표를 이 자리에 데리고 온 사람이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 칼을 들이대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배은망덕한 모습으로 비쳐질 수 있다. 은혜를 고마움으로 갚아야 한다. 막말로 내가 임 회장 아니었다면 수협중앙회 대표이사를 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몇해 전 외부에서 온 수협중앙회 모 간부는 임기가 끝났으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임기가 연장됐다. 그는 그의 임기를 연장토록 허가해 준 기관과 아무 때나 필요하다면 자리를 물려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는 후임자가 거론되자 “나는 하루도 더 있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 사람이 이 자리에 오면 안 된다”며 자리를 빼주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얼마간 자리를 유지했지만 결국 그는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명예와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서다. 

 사람과의 관계는 약속이 중요하다. 불가피하게 약속을 파기할 정당성이 없다면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그리고 사회는 그 약속이 지켜지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나가겠다고 생각한다면 대표이사 후임 선출을 위한 이사회를 하든 말든 내가 더 이상 상관할 필요가 없다. 수협을 위해 당초 약속대로 둘이 동시 동반 퇴진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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