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칼럼 / 문영주 편집국장

한국수산회가 수산계 여론을 집결하는 상위단체인지
수산 잡다한 업무 하는 만물상인지 분명하게 해줘야

문영주 편집국장
문영주 편집국장

 지금 세상은 그야말로 혼돈의 시대다. 

 얼마 전 미국은 영하 40도가 넘는 기록적인 한파와 폭설로 40여명의 사망자가 생기고 대통령이 외부 출입을 자제해 달라는 얘기까지 했다고 한다. 한파, 폭설, 폭우, 지진, 태풍, 참사라는 얘기는 이제 언론에서 어쩌다 한번 나오는 얘기가 아니다. 

 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아직 끝이 보이지 않고 있으며 지구촌 곳곳은 크고 작은 분쟁과 싸움으로 얼룩지고 있다. 세대 간 갈등은 양극화로 치닫는 빈부 격차보다 더 커지고 있고 같은 공간에 있어도 세대, 이념, 종교, 가치관에 따라 생각은 천태만상이다. 문학에 장르가 무너진 지 오래고 융합이라는 이름 아래 모든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글자 그대로 혼돈, 혼란의 시대다.

 수산업도 마찬가지다. 해수면 온도 상승으로 지금 바다는 미래가 불확실한 시대를 맞고 있다. 이상기후가 해양 환경을 언제 어떻게 바꿔 놓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사람들에게 스며든 지 오래다. 정부가 어선 감척을 하고 어업구조조정을 한다고 야단법석이지만 나중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금 막대한 예산을 들여 구조조정을 하고 인공어초를 투하한다. 오류를 범할 수 있지만 지금으로선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또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이 인간을 지배할지 모른다는 가설이 타당하다면 자율어선이 AI 기능을 가진 로봇에 의해 바다에서 수산물을 어획하는 시대가 머지않아 올 수도 있다. 얼마 전 수산 규제를 풀기 위해 어업인들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들은 수산자원정책혁신 현장발굴단에 따르면 수산자원 관리에 국제 규범처럼 보였던 TAC(총허용어획량)는 정책 수요자들로부터 철저히 외면을 받고 있다. 제도가 현실과 맞지 않다는 까닭에서다. ‘공유지의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어업인들은 정부의 ‘어설픈 규제’가 오히려 자원을 낭비하고 분쟁을 초래하고 있다며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정어리 떼죽음을 놓고 정부와 대학교수 간의 논쟁은 지금 우리의 수산 정책이 얼마나 혼란스러운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한 예에 불과하다. 정말 혼돈의 시대다. 

 이런 혼란과 혼돈이 해가 바뀐다고 바뀔 것 같지 않다. 이상기후가 당장 모든 걸 한꺼번에 바꾸진 않겠지만 앞으로 수산업을 어떻게 위협할지도 모른다. 또 어업인들이 우려하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은 수입 개방으로 인한 피해도 피해이지만 정부가 지원하는 수산 보조금 철폐까지 건드리고 있어 간단히 볼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이 협정은 환경과 노동에 대한 규범까지 협상 테이블에 올릴 것으로 보여 논의가 시작되면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출은 올해 초 우리나라 수산계를 뜨겁게 달굴 가장 민감한 이슈다. 수협중앙회 수산경제원이 최근 내놓은 올해 수산경제 전망 자료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 수산물 소비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게 바로 이 부분이다. 부경대 김도훈 교수는 “오염수가 우리나라에 오느냐, 안 오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수산물 소비 심리가 중요하다”며 “오염수가 방류되면 대부분 소비자들은 수산물의 소비를 크게 줄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수경연은 오염수 해양 방류는 모든 수산물 소비에 변수가 아닌 상수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이런 악재가 생성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어업인이 껴안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정부의 철저한 대응이 필요해 보인다. 이 밖에 어업인구 고령화, 어촌소멸 등 수산업 생산 기반을 흔들 수 있는 위험 요인들도 곳곳에 널려 있다. 이것도 태풍이 불면 수산업 뿌리를 흔들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따라서 수산계는 이제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한다. 상황에 맞는 생존전략을 찾지 않으면 소멸된다고 생각하고 모든 지혜를 동원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수산계는 할 일이 많다. 먼저 각자 위치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교과서적인 얘기지만 정부는 정부대로, 수협은 수협대로, 각 기관과 단체는 기관과 단체대로, 또 어업인은 어업인대로 각자의 위치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는 게 필요하다. 그간 해양수산부가 행정 편의를 위해 기관 및 단체에 여기저기 업무를 끼워 넣어 그 기관이 뭐 하는 기관인지 모르는 국적 불명의 기관을 만들었다면 이제 이들의 업무를 정리해 줘야 한다. 정부가 혼란을 줄이지 않고 오히려 혼란을 방치하거나 확대해서는 안 된다. 한국수산회가 수산계 여론을 집결하는 상위단체인지, 아니면 수산의 잡다한 업무를 하는 만물상인지 정체를 분명하게 해줘야 한다. 또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이 어선검사를 하는 곳인지, 여객선 안전 업무를 하는 곳인지 헷갈리게 하는 이런 이질적인 생태계도 만들어선 안 된다. 자신의 정체성도 분명하지 않은 사람들끼리 모여 수산업 위기를 논하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올해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일부터 시작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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