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 없는 바다는 사막이다

윤학배 전 해수부 차관
윤학배 전 해수부 차관

 성질 급한 멸치이지만

 우리가 애용하는 생선 중에 가장 작은 물고기는 아마도 멸치일 것이다. 지금은 조금 달라졌지만 이전에는 결혼식에서 가장 흔한 음식이 뜨끈하고 구수한 멸치국물에 김 등 고명이 얹어서 나오는 잔치국수였다. 여기에다 김치나 콩나물을 얹어서 먹으면 국수 한 그릇이지만 세상의 어떤 음식과 비교해도 지지 않는 고향의 맛이 철철 넘치는 최고의 결혼식 음식이었다. 지금도 언제 결혼하느냐고 물어 볼 때 언제 국수 먹느냐고 물어보는데 바로 이 국수가 멸치 국수인 것이다. 

 멸치란 친구는 성질이 급해서 물 밖으로 나오면 바로 죽는데 이 때문에 멸(滅)치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멸치를 잡으면 배 위에서 바로 펄펄 끓는 물에 삶아서 신선도를 유지하고 나중에 만선이 되면 육지로 운반하거나 따로 운반선을 통해서 육지로 실어 오는 것이다. 이 삶은 멸치는 육지로 옮겨져서 말린 후에 크기에 따라 대멸, 중멸, 소멸, 세멸로 나뉘어져 판매하게 되는데, 삶지 않은 멸치는 바로 소금으로 절여서 젓갈로 인생이 바뀌는 것이다. 마른 멸치가 되느냐 멸치 젓갈이 되느냐의 갈림길이 삶아지는 여부에 달린 것이다. 이런 멸치는 다양한 방법으로 요리에 사용되어 칼슘 등 우리에게 필요한 영양분을 제공한다. 멸치는 대부분 그물로 잡지만 경남 남해에서는 죽방렴이라 하여 대나무로 만든 큰 발을 바다에 세워서 밀물과 썰물을 이용하여 멸치를 잡기도 한다. 그물로 잡는 멸치는 서로 부딪치고 상처가 나기 쉽지만 죽방렴 멸치는 잡는 양은 많지 않으나 비늘이 그대로 살아 있어서 최고급 멸치로 대접받아 비싸게 팔린다. 

 멸치 똥을 먹을까 말까

 작은 멸치도 생선이기에 내장이 있고 똥이 있다. 그러기에 멸치로 국물을 내는 경우에 대부분은 멸치 똥인 새카만 부분을 다 발라내고 남은 부분을 사용하기도 한다. 국물 맛이 쓰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는데 사실 영양분은 그 멸치 똥에 더 많다. 멸치는 너무 작은 생선이기에 누구를 잡아먹기 보다는 잡아 먹히는 것을 피하기에 급급한 형편이어서 주된 먹이는 바다에 떠다니는 플랑크톤인 것이다. 다른 물고기를 잡아먹는 큰 물고기야 내장에서 냄새도 나기도 하고 비린내도 심하지만 멸치는 플랑크톤만 먹으니 중금속이나 바다의 오염에서 훨씬 더 자유로운 것이다. 거기에다 멸치 내장은 영양덩어리라 하니, 이제부터는 좋은 약이 입에 쓰다고 몸을 생각해서 멸치 똥을 버리지 말고 그대로 먹어 보는 용기를 내보자. 우리가 전복을 먹을 때 전복 내장인 푸른 부분을 회로 먹거나 아니면 전복죽을 끓일 때에 사용하면 맛이 좋아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전복도 주된 먹이가 다시마와 미역이어서 좋은 해조류만을 먹는 전복의 내장에는 좋은 성분이 있기에 우리가 즐겨 먹는 것이다. 멸치는 똥도 버릴 것 없는 영양분 덩어리이다. 

 그러나 멸치의 중요성은 우리의 먹거리에 있기보다는 바로 바다에서 다른 물고기의 먹이가 된다는데 있다. 멸치가 풍부해야 다른 물고기가 풍부하고 다양하게 된다. 물고기중 먹이사슬의 가장 바닥에 있기에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우리나라 연근해에서 멸치는 가장 많이 잡히는 어종 중에 하나이지만 그 어획량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 멸치가 줄어들면 다른 물고기의 먹이가 줄어들어 큰 물고기도 당연하게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멸치는 바다의 어족자원이 풍부한지를 가늠하는 하나의 지표어종(indicator)이라 불리는 것이다. 시베리아 숲속에 사슴이나 노루와 멧돼지가 있어야 시베리아 호랑이가 살아 남듯이 작은 멸치 한 마리가 있어야 고래와 상어가 있는 것이고 바다에 생명이 넘치는 것이다. 멸치 한 마리에도 감사하고 고맙게 생각할 이유가 충분한 것이다. 물 반 고기 반, 아니 물 반 멸치 반의 바다로 만들어 보자. <윤학배 전 해양수산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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