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은 바다를 좋아한다(2)
역사는 우리에게 말한다
여왕은 바다를 좋아하고
여왕이 통치하던 시기에
바다로 진출하여 전성기를 구가했다고...

윤학배 전 해수부 차관
윤학배 전 해수부 차관

 대영제국의 완성자이자 유럽의 할머니 빅토리아 여왕

 빅토리아 여왕은 우선 64년이라는 엄청난 재위 기간(1837-1901재위)으로 유명하다. 얼마전 작고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 이어 두 번째이다. 빅토리아 여왕은 바다와 섬을 사랑한 여왕이라고도 불린다. 이런 별명에 걸맞게 남편인 알버트(Albert) 공이 마흔 두살 젊은 나이로 먼저 세상을 뜨자 남편과의 추억이 깃든 영국 남부 포츠머스 남쪽에 위치한 와이트 섬(Isle of Wight)의 오스본 하우스에 은둔하며 정사를 보지 않았고 결국 이 섬에서 숨을 거둔다. 

 빅토리아 시절은 영국이 역사상 가장 최전성기를 누리던 시기로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라는 말로 모든 것을 표현한다. 이 시대야말로 영국인들이 가장 자랑하는 최고의 시기였다. 지금 런던의 버킹엄궁 인근이나 첼시 지역 등에 남아있는 고풍스런 멋진 석조건물들은 대부분이 빅토리아 시대에 지어진 건물들이다. 우리가 지금 보는 런던의 모습이 이 당시의 모습인 것이다. 빅토리아 여왕은 아편전쟁을 통해 중국을 굴복시켜 홍콩을 할양받았으며 인도제국을 동인도회사를 통한 간접통치에서 직접 통치로 전환하여 인도 황제가 되었고 아프리카에서는 남쪽의 남아공에서 북쪽 이집트까지 대륙을 관통하는 소위 영어를 사용하는 앵글로폰(Anglophone) 식민지를 구축했다. 또한 우리 거문도를 점령하고 일본과 영일동맹을 맺어 결국 일본이 러일 전쟁에서 승리하여 조선을 합병하도록 도움을 준 것도 이 기간이다. 빅토리아라는 이름은 아프리카 빅토리아 폭포부터 런던의 빅토리아 역, 빅토리아 & 알버트 박물관 등 다양한 건물과 지명에 남아있다. 남편 알버트 공작을 기리기 위해 알버트 홀, 알버트 다리 등 당시 건설한 많은 건축물에 알버트의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빅토리아 여왕은 당시 지구의 1/4 면적과 지구인구의 1/4을 다스리는 그야말로 대영제국이자 해양대국의 여제였다. 게다가 4남 5녀의 많은 자녀들을 두어서 이들이 유렵각국의 왕실과 혼인관계를 맺어서 손자손녀들 까지 포함하면 연결 되지 않은 유럽국가의 왕실이 없기에 유럽의 할머니라고도 불린다.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과 콜럼부스

 스페인 카스티야 왕국의 왕이었던 이사벨라 여왕은 아라곤의 왕이던 페르난도 2세와 결혼을 통해 1492년에는 스페인 남쪽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에 남아있던 마지막 이슬람세력을 몰아내고 이베리아 반도를 통일하게 된다. 이 카스티야 왕국의 이름에서 카스테라 빵이 유래했다. 이후 스페인은 가톨릭의 수호자 역할을 하게 된다. 이어 같은 해 이사벨라 여왕이 콜럼부스의 청을 받아들여 신대륙 탐험을 하게 한다. 콜럼부스의 항해성공으로 이베리아 반도 구석의 후진국이던 스페인은 유럽은 물론 세계의 강자로 발돋움 하여 16세기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역사에 가정이란 무의미 하지만 이사벨라 여왕이 아니었으면 콜럼부스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인류의 역사도 지금과도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사벨라 여왕은 남미 갈라파고스 제도에 있는 가장 큰 섬인 이사벨라 섬에 남아 있다.

 러시아를 유럽의 강국으로, 예카테리나 여제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대제(1762-1796재위)는 독일 태생으로 러시아에 왕비로 시집왔으나 오히려 시원찮은 왕이던 남편 표트르 3세(러시아의 근대화를 이룬 러시아 최초의 황제인 표트르 대제가 아니다)를 폐위시키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 철의 여인이다. 예카테리나 여제는 러시아를 근대 산업국가로 재편하여 독일출신 임에도 러시아인들에게 사랑받은 여인이다. 여제가 확립한 러시아의 행정체제는 1917년 볼셰비키혁명까지 러시아 통치 기반이 되었다. 또한 철의 여인답게 전쟁을 불사하여 발트해 지역의 영유권을 확실하게 굳히고 오스만 투르크를 물리쳐 크림반도를 확보, 흑해를 통해 대양으로 진출할 수 있는 해양통로를 만들었다. 또한 시베리아로 진출하여 극동지역 바다를 확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내륙에서도 폴란드 지역을 분할하는 등 유럽의 변방 러시아에서 유럽의 중심국으로 탈바꿈시켰다. 여제 치하인 18세기말 러시아 인구는 4천만 명에 달해 유럽인구의 20%를 차지하는 최대국가가 되었다. 

 역사는 우리에게 말한다. 여왕은 바다를 좋아하고 여왕이 통치하던 시기에 바다로 진출하여 전성기를 구가했다고...  <윤학배 전 해양수산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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