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왕실의 남다른 바다 사랑
“대한민국 대통령도 태극기가 휘날리는 전용선박을 타고 한강에서 아라뱃길을 거쳐 인천항이나 동해나 서해의 어느 지역을 방문하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멋진 모습”

윤학배 전 해수부 차관
윤학배 전 해수부 차관

 노블레스 오블리주, 우리 사전에 군 미필은 없다

 영국 왕실의 남자들 즉 왕자들은 대대로 군에 복무하는 전통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우선적으로 해군에 복무하는 것이 전통이다. 이러한 전통에 따라 얼마 전에 영면한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의 할아버지이자 윈저 왕가를 연 조지 5세와 아버지 조지 6세는 모두 해군에 장교로 복무하여 1차 대전에 참전하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2세도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였는데 여왕은 2차 대전 중 영국의 국방군에 장교로 자원 입대하여 보급 장교로서 임무를 수행했다고 한다. 작년 (2021년 4월) 99세에 세상을 떠난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남편 필립 공(공식 직위는 에딘버러 공작, Duke of Edinburgh)도 해군함정에서 장교로서 갑판사관으로 복무했으며 2차 세계대전 기간 중 해군 대위로 참전한 바 있다. 영국 여왕의 뒤를 이어 왕위를 물려받은 찰스 3세 왕은 1970년대 해군에 입대하여 전투기 조종사로 근무한 바 있다. 왕실은 아니지만 영국을 2차 세계대전의 패배에서 구한 처칠 수상도 1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는 해군 장군으로 복무하면서 영국해군을 지휘한 바 있다. 영국이 바다의 국가이니 당연히 해군에 입대하는 전통이 있다고 볼 수도 있으나, 영국 왕실이 솔선수범해서 군대에 입대를 하고 심지어는 전쟁에  참전을 하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 참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들에게 군 미필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지도자들이나 엘리트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이자 아쉬운 대목이다. 

 영국에는 왕실의 전용선박

 통상 국가에는 대통령이나 왕 또는 수상들이 해외 순방이나 국내 방문을 위하여 사용되는 전용비행기가 있다. 전용비행기를 국가가 직접 소유하기도 하고 임대하기도 하지만 전용으로 사용하는 것은 동일하다. 우리나라도 공군1호기(Air Force One)라 하여 대통령 전용비행기가 있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는 대통령이 이용하는 전용 기차(Train One)가 별도로 편성되어 있는데 이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다. 그런데 영국에는 해양국가 답게 여왕이나 왕실이 이용하는 전용선박이 있었다. 영국 군주의 전용 선박은 단지 여행하는 운송수단이 아니다. 국가를 위한 외교의 수단이다. 이 왕실 전용 선박의 이름은 영국을 상징하듯이 ‘브리타니아’(Britannia)호인데, 영국 엘리자베스 2세가 즉위한 이듬해인 1953년 진수되어 1997년 퇴역할 때까지 44년간 전 세계 주요 국가를 항해하여 방문하면서 해양국가 영국의 자존심을 세계 각국에 알리는 외교사절의 역할을 했다. 이 선박에는 레이건이나 클린턴 또는 넬슨 만델라 대통령 등 세계의 유명 인사들이 초대 되었는데 브리타니아 호 초대는 곧 세계 명사 대열에 합류하게 됨을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하나의 증표였던 것이다. 그러나 사람도 수명이 있듯이 브리타니아는그 찬란한 역사를 뒤로하고 1997년 퇴역을 하게 된다. 브리타니아 퇴역 이후에 이를 대체할 새로운 왕실 전용 선박을 건조하자는 논의가 당연히 있었으나 당시 1,000억원이 넘는 막대한 비용 부담문제와 더불어 1997년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교통사고에 따른 사망 등 왕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 등으로 인해 현재는 왕실의 전용선박이 없는 상황이다. 매우 많은 영국인들이 아쉬워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영국이 해양국가라는 사실과 영국인들의 바다에 대한 애정을 고려하면 조만간 적정한 시기에 왕실전용 선박에 대한 논의가 다시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는 반도국가로 북한이 있어서 실질적으로는 섬나라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대통령의 전용선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기를 희망해 본다. 전용선박을 소유하기가 어렵다면 적정한 선박을 전용 항공기처럼 임차하여 전용선박으로 활용해서 운영하는 방법은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태극기가 휘날리는 전용선박을 타고 한강에서 아라뱃길을 거쳐 인천항이나 동해나 서해의 어느 지역을 방문하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멋진 모습 않을까 한다. 더 나아가 부산이나 인천에서 출항하는 전용선박을 이용해 대통령이 일본이나 중국 또는 러시아의 극동 지역을 국빈 방문하는 모습을 그려본다. 동해 명칭 문제나 독도 문제는 우리 국민의 자존심에 걸린 문제이다. 대통령 전용선박 보다 해양을 향한 더 강한 메시지와 의지의 표현이 어디 있겠는가. <윤학배 전 해양수산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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