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찰제 국가인 영국에도 시가(時價)가 있네"

"도버해협에 사는 물고기들 생존 위해
거센 해류 이겨내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여,
그래서 도버해협 밑바닥에서 잡히는 도버 가자미는
육질이 찰지고 별미로 손꼽히는 것"

윤학배 전 해양수산부 차관
윤학배 전 해양수산부 차관

 영국에서 중국 음식은 매우 인기가 있고 또 현지인들도 즐겨 찾는 음식이다. 어느 날 현지인들과 함께 런던 중심가에 있는 중식당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메뉴판을 보니 ‘도버 솔(dover sole) 구이’ 즉 도버해협에서 잡히는 ‘도버 가자미 구이‘라는 메뉴가 있는데 그 옆에 가격란이 비어 있고 대신 ‘Seasonal Price’, 즉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시가라는 의미로 적혀 있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에서야 시가라는 것이 상당히 다양하게 통용되기도 하고 그것이 어찌 보면 상인이나 소비자에게 윈윈이 되기도 한다. 우리네 전통시장이나 장날의 가격은 물론 정찰제도 있지만 시가의 모습이 강한 것이다. 그러나 생각지도 않게 영국에도 시가가 있었다. 도버솔은 많이 잡히지 않고 계절에 따라 잡히는 양도 다른 귀한 생선이라 가격을 정하지 못하고 시기에 따라 변동된 가격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정가(定價)의 나라 영국에서 시가라니!! 

 당시에 나는 영국주재 우리나라 대사관에서 해양수산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식당에 가서 생선 요리만 나오면 이름이 무엇이고 어디에서 잡히며 어떻게 먹는지 더욱이 영어로는 무엇이라 부르는지 주위 사람들이 물어보는 바람에 매우 난감해 했던 기억이 있다. 원래 수산업무가 아닌 해양업무를 주로 했던 까닭에 우리말로도 생선이름을 정확히 알고 구분하기도 어려운데 영어로는 더욱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실제 수산 업무를 했다 하여도 정책업무를 하는 터라 요리가 되어 나온 비슷하기도 한 물고기의 이름과 종류를 다 알기는 어렵기도 하다.

 그런데 통상 sole은 바다 바닥에 주로 서식하는 납작한 생선인 가자미류를 의미하는데 Dover가 붙어 있는 것을 보니 도버해협에서 잡힌 것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좀 더 자세히 알아보니 영국에서는 가자미 중에서 도버해협에서 잡힌 것을 최고로 친다는 것이었다. 도버 해협은 길이가 35km정도로 영국 섬과 유럽 대륙인 프랑스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데, 지리적으로 대서양에서 유럽대륙방향으로 밀려오는 멕시코해류가 스페인의 서쪽 해안에 부딪진 후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좁은 지형인 도버해협을 지나 북해로 들어가게 되어 한꺼번에 많은 바닷물이 좁은 해협을 흐르다 보니 물살이 매우 거세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과거나 현재에도 바다를 항해하는 사람들에게 스페인 서쪽 해안은 바다의 무덤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많은 선박사고가 발생한 곳으로 유명하다. 그 이유가 바로 대서양에서 밀려오는 멕시코만 난류가 이베리아 반도와 충돌하고 소용돌이 형태로 변하면서 선박항해에 큰 지장을 주게 되는 것이다. 2002년에도 기관 고장 등 아무런 문제도 없이 정상운항을 하던 대형 유조선인 프레스티지(Prestige)호가 원유를 가득 실은 채 스페인 서부해안에서 침몰하여 싣고 있던 원유가 대량 유출되는 해양환경 참사가 발생했다. 이러한 사고처럼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선박사고가 이 부근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는데 전문가들은 바로 멕시코 연안에서부터 시작되는 대서양의 주된 해류의 하나인 멕시코난류 때문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멕시코 난류 때문에 유럽대륙이 겨울에도 온화한 기후를 누리는 혜택을 보고 있으나, 바다에서는 스페인 서부에서 한류와 부딪치며 안개와 함께 거친 물살과 파도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따라서 도버해협에 사는 물고기들은 생존을 위해 거센 해류를 이겨내야 하므로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데 이런 이유로 도버해협 밑바닥에서 잡히는 도버 가자미는 육질이 찰지고 별미로 손꼽히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어획량도 많지 않아서 가격의 변동 폭이 크기에 런던 중식당의 메뉴판에 가격을 표기하지 않고 그때 그때마다 다른 가격인 시가로 판매했던 것이다.

 규정과 규격의 나라 영국에서 살짝 인간의 체취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러고 보면 사람 사는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는가 보다. 시가는 만국 공통이다. <윤학배 전 해양수산부 차관>

저작권자 © 수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