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의 살아있는 역사...새로운 반세기 향한 전진 계속된다

 

  수협이 창립 51주년을 맞이했다.

  이종구 회장이 51주년 기념사에서 “유구한 전통의 협동조직인 어촌계가 근간을 이루는 우리 수협은 협동조합의 살아있는 역사”라고 평가한 바와 같이 수협의 역사는 ‘일인은 만인을 위하여, 만인은 일인을 위하여’라는 협동의 정신을 실천한 역사였다.

  어업인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지위향상을 이끌어낸 반세기의 대장정은 이제 100년을 향한 항해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 창립 50주년을 맞아 수협은 어업인을 뛰어 넘어 전체 수산인의 의지를 결집하며 협동운동의 정점을 찍었다.

  반세기 역사를 돌아보고 미래 백년의 의지를 다진 지난해 11월 6일 수협은 ‘전국 수산인 한마음 전진대회’를 열어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전국의 어업인과 수산인들을 서울광장으로 불러 모았다.

  모든 수산인이 하나로 연대하여 보여준 단합된 힘은 수협을 넘어 대한민국 수산업의 백년대계를 향한 주춧돌을 놓았다.

  해양수산부가 부활했고, 박근혜 정부는 ‘수산의 미래 산업화’를 국정과제로 내세움으로써 수산업은 고부가가치 생성을 통해 창조경제의 한 축으로 성장할 기회를 맞고 있다.

  해수부 역사 이래 단 한번도 없었던 수산 출신 손재학 차관이 임명된 것도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더하고 있다.

  1973년 자취를 감췄던 어업인의 날을 주도적으로 되살려 낸 것도 지난 51년 간 성과의 무게감을 더한다.

  수협이 걸어온 반백년의 역사를 되돌아본다.

어업인을 위한 희망의 첫걸음

  광복 후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는 산업기반이 황폐화된 불모지였다.
  이 시기 우리 수산업은 국민들의 식량과 생계를 책임지는 소중한 산업이었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수출을 주도하며 근대화의 기틀을 다잡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수협은 고립, 분산된 어업인들을 조직화함으로써 자원과 어장조성, 어업관리에서 생산, 유통 금융, 가공 및 지도교육에 이르는 수산업의 근대화를 이끌어갈 시대적 소명을 안고 1962년 4월 1일 발족한다.
  이때 수협은 생성의 연원을 고려시대까지 추정할 수 있는 전통의 협동조직인 어촌계를 계통조직으로 흡수하며 86개 지구별조합과 11개 업종별조합 및 2개 제조업조합 등 총 99개 조합과 중앙회로 첫 발을 디뎠다.
  이후 수산자금 공급, 어업무선통신업무 전담, 어업용 면세유류 직배사업업무 개시 등 협동조합 본연의 업무영역을 구축하며 수산업 발전을 견인한다.
수협의 발족과 함께 어업인의 위상도 한껏 높아진다.
  1969년 4월 1일, 농민의 날도 없던 당시 어민의 날이 국가 기념일로 지정된 것이다.
  정부가 사기진작에 직접 나설 정도로 어업인과 수산업, 그리고 수협의 역할은 지대했다.

더욱 큰 성장의 바다로 


  1970년대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끈 새마을운동과 더불어 수협은 어촌계를 기반으로 한 탄탄한 조직력과 협동정신을 바탕으로 더 큰 성장을 구가한다.
  특히 1974년 세계적인 유류파동의 여파로 조직 뿐만 아니라 어촌과 수산업계가 침체의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1974년부터 제1차 수협장기발전 계획을 수립해 실시함으로써 역경을 이겨낸다.
  무엇보다도 정부의 재정난으로 수산자금 조달이 어려워짐에 따라 자체자금조성에 노력하면서 1976년부터는 상호금융 업무를 개시하는 등 어촌경제 발전을 위해 적극적 행보를 이어나갔다.
  또한 대내외 경제난으로 인한 물가상승에 대응해 선수물자 공동구매사업, 수산물가격안정사업, 수산물수출 등 생산자와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영역에서 사업을 펼친다.
  1974년 공제병원선 취항으로 어업인 복지에도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됐다.
  의료의 사각지대에 놓였던 도서지역의 어민들을 위해 수협은 제1호 공제병원선 ‘척양호’에 이어 1975년 ‘새어민호’, 1977년 ‘새수협호’를 차례로 건조한다.
  이를 통해 전국 각지 10만여명이 넘는 어민들이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수협은 이 시기에 국제적인 협동조합운동에도 동참한다.
  1979년 국제협동조합연맹의 회원가입 승인을 통해 정회원으로 가입하며 세계무대로 행동반경을 넓힌다.

어촌경제 안정, 회원조합의 자립과 균형발전, 복지어촌을 향한 전진

  1982년 제2차 수협 장기발전 계획은 어가경제의 안정적 기반조성과 더불어 회원조합의 책임경영과 자립을 골자로 추진된다.
  이 시기는 전산화 도입으로 신용사업의 혁신이 일어난다.
  1984년 온라인예금업무가 개시되고 1988년 신탁업무가 추가된데 이어 1989년에는 전자계산소 신축에 나서는 등 신용사업의 탄탄한 기반이 조성된다.
  수산물 유통체계도 확고해졌다.
  1978년 중앙회의 첫 번째 소비지 분산시설인 서울공판장이 개설된데 이어 1985년 가락동공판장까지 총 9개의 내륙지 계통출하시설을 확보하기에 이른 것이다.
  수협은 이를 통해 소비지 시장 점유율을 높임으로써 수산물 유통의 공공성을 제고하고 생산자와 소비자를 보호하는 협동조합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게 된다.

민주 수협의 기반 위에 대약진의 길로


  1987년 6월 항쟁 이후 사회에 불어온 민주화의 훈풍은 수협에도 찾아든다.
  1988년 제11차 수협법 개정을 통해 수협은 기존의 정부통제를 탈피해 민주적 경영의 기반을 마련한다.
  상급기관인 수산청의 감독승인 권한이 수협중앙회로 이양된 것을 비롯해 중앙회장과 조합장을 직접 선출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1972년 임명제로 전환된 지 18년만인 1990년, 수협중앙회 직선제 회장 선거가 실시되고 수협의 민주화는 꽃을 활짝 피운다.
  민주화와 자율화의 숙원을 이룬 수협은 1990년를 맞아 진정한 도약의 걸음을 내딛기 시작한다.
  1990년 ‘3조원 자체자금 조성운동’을 결의하며 신용점포 개설 및 상호금융업무 기능 확대를 위해 조직의 역량을 집중한다.
  1993년에는 잠실 현 청사를 완공하며 자체청사를 마련하게 된다.
  1995년 수산경제연구원의 개원은 조사연구업무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며 수산업과 어업인 보호를 위한 정책과 논리 개발로 수협의 위상과 역할을 한단계 높이는 계기가 됐다.
  이어 1997년에는 협동조합 교육의 요람인 천안연수원을 개원하면서 수협은 장기 발전을 위해 필수적인 인적역량 제고의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위기 그리고 극복

  민주화의 훈풍을 타고 온 규제철폐 정책으로 수산업도 큰 변화를 겪게 된다.
  대표적으로 수협 위판장을 이용하던 의무적인 상장제도가 1997년 7월 자유 판매제로 전환한 것이다.
  이는 협동조합의 근간인 경제사업의 기반을 흔들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불어닥친 1997년 외환위기는 수협에 경영위기를 불러와 2001년 공적자금이 투입 되는 빌미를 제공했다.
  이로 인해 협동조합의 자주성에도 커다란 위기가 닥쳐왔다.
  지도, 경제, 신용사업이 각기 분리 되면서 어업인과 회원조합을 지원해야 하는 본연의 기능이 크게 위축된 것이다.
  그러나 수협은 서둘러 신수협운동에 착수, 빠르게 경영을 정상화 시키며 안정을 되찾아간다.
  이와 함께 수도권 최대 수산물도매시장인 노량진수산시장을 인수하면서 산지회원조합과 연계한 수산물의 일관된 도매물류체계를 구축하는 기회를 마련한다.
  안정된 경영실적을 바탕으로 ‘사랑海’운동 등 사회 공헌활동에도 적극 나서며 믿음직한 협동조합으로 이미지를 구축한다.
  무엇보다도 2009년 어업인복지 전담기구인 어업인교육문화복지재단을 출범시키면서 소외된 어촌 서민들을 돌보는 안전망을 구축하는 전기를 마련한다.
  2010년 지도사업과 경제사업의 통합은 위기를 극복해 협동조합 본연의 기능을 회복해온 수협의 노력과 험난한 여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우리 어업인의 저력, 한국을 넘어 세계로
 

  어업인의 노력으로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수산업 선도국가인 대한민국은 2009년 국제협동조합 가입 이래 최초로 ICA수산위원회 의장국이 된다.
  전 세계가 한국의 수협을 주목하고, 어업인과 함께 성장해온 살아있는 협동조합의 역사로서 그 가치를 인정한 것이다.
  이종구 회장은 ICA수산위원장으로서 우리나라 수협의 발전 경험을 세계 어업인과 공유하고, 지속가능한 수산업을 위한 협동조합의 역할을 강조하며 ‘서울선언’ 채택 및 ‘세계 수협의 날’ 제정을 이끌어 냈다.
  이 같은 국제적 공헌에 힘입어 우리나라는 아시아권 최초로 협동조합의 노벨상인 로치데일파이오니어상을 이종구 회장이 수상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대한민국 수협은 달리진 우리 수산업의 국제적 위상을 알리며 국격 제고에도 큰 기여를 해냈다.

다시 한번 협동의 시대로

  2008년 이후 지속되는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로 인해 양극화가 심화되며 협동조합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연대와 상생을 핵심가치로 하는 협동조합이야말로 불황의 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 사회 안전망이다.
  이에 따라 수협은 기존의 어업인 지원 기능을 강화하는 한편, 수산업의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전체 수산업계와 함께 2012년 11월 ‘전국 수산인 한마음 전진대회’를 개최하며 해양수산부 부활과 새정부의 강화된 수산정책을 이끌어내는데 크게 기여해내기도 했다.
  가시화되는 수협 선진화 방안도 협동조합으로서 본연의 역할을 더욱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다.
  수협은 전국 수산인과 협동의 깃발 아래 하나의 가치를 추구하며 최고의 협동조합으로서 미래 백년을 맞이할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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