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생각해 봅시다 /문영주 편집국장

농업은 NGO 많은데 수산은 제대로 된 NGO 없고
현안 많지만 수협·한수연 외 목소리 내는 곳 없어
KMI 영문 명칭에 수산 빠졌는데도 KMI에 항의도 못해

 “문패에 집주인 이름이 빠졌어요. 그런데도 집주인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이건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 아닌가요”
요즘 수산계를 향해 나오는 말이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이 영문 명칭에 ‘수산’ 자를 넣지 않은 게 20여년. 그런데도 수산계는 지금까지 KMI에 왜 수산 자를 넣지 않느냐고 항의하지 않는다. 문패에 이름을 뺐는데 말이다. 이런 행동은 옛날로 치면 형편없는 아래 사람들한테 하는 짓이다. 이름을 넣으면 부끄러워 일부러 빼는 경우가 아니면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현재 KMI 영문 명칭은 기관에 수산이 없던 때, 그러니까 1984년 2월 한국해운기술원(KMI 전신) 창립 때 만든 명칭이다. 그러니까 수산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만든 명칭이다. 그런데도 김종덕 KMI원장은 얼마 전 본지와 서면 인터뷰에서 KMI의 ‘M’자인 ‘Maritime’은 바다, 해양의 뜻이 있어 수산을 포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해운기술원이 수산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던 때 수산자를 포함한 영문명칭을 만들었다는 것은 궁색한 변명일 뿐 아니라 소가 웃을 일이다. 그럼 해운항만청과 수산청이 통합했는데 해운항만청을 빼고 수산청만 넣으면 그쪽 사람들은 뭐라고 말할까.

 얼마 전 본지가 여기에 문제를 제기(2월 7일자 1면 게재)하며 개선이 필요함을 지적했다. 하지만 정작 입을 열어야 할 수산계는 입을 닫고 있다. 형편없는 대우를 받는데도 어느 수산 단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 조그만 공식 행사에서 자기 이름을 빼면 왜 내 이름을 뺐냐고 기분 나빠할 사람들이 수산계 전체가 능멸당하는 데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 수산계 중진은 “KMI가 수산을 무시하지 않으면 20여년 간 이렇게 하겠느냐”며 “수산계가 문제를 제기하면 이름은 얼마든지 고칠 수 있을 텐데 안타깝다”고 했다.

 수산 무시나 수산 홀대 아니면 일어날 수 없는, 의당 고쳐야 할 일인데도 수산계 단체들은 꿀먹은 벙어리마냥 입을 닫고 있다. 도대체 수산계가 이런 일에  입을 닫고 침묵하는 이유가 뭘까. 이건 현재 수산 생태계에서 답을 찾을 수밖에 없다.

 현재 수산계는 한국수산산업총연합회(한수총), 한국수산회, 수협중앙회, 한국원양산업협회, 한국수산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수연), 한국수산무역협회 등 ‘회’자 돌림 민간단체들이 있다. 여기에 정부 업무를 대행하는 준정부기관인 한국어촌어항공단,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해양교통안전공단 등이 수산관련 업무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가운데 NGO다운 NGO가 하나도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들은 사단법인, 특수법인, 준정부기관으로 나뉘어 있지만 대부분 정부 위탁 업무 때문에 먹고사는 기관들이다. NGO와 공공단체, 기관, 학계 등이 촘촘히 엮여 있는 농업 생태계와는 전혀 딴판이다.

 농업계는 농업과 농민 전체 목소리를 내는 단체에서부터 품목별, 업종별 단체 등 생태계가 다양하게 짜여 있다. 수산계처럼 준정부기관 성격의 기구나 단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순수 NGO로 볼 수 있는 단체들이 적지 않다. 과거 카톨릭 농민회, 한농연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들 목소리는 정치권이나 언론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세하고 있다.
 그러나 수산계는 수협과 한수연이 전국적인 조직을 갖고 있지만 이렇다 할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또 이들도 전체 수산계를 위하기보다는 자기들 이익과 관련한 한정된 부분만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수총과 한국수산회 등은 명목상으로는 수산계 전체를 아우르는 단체다. 하지만 이들에게 수산계 전체를 대변하는 목소리를 듣기가 쉽지 않다. 한수총은 덩치가 커보이지만 유명무실한 단체라는 소리를 듣고 있고 한국수산회는 정부의 위탁사업을 하는 기관으로 전락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학계 한 인사는 “이런 문제는 수산계 전체의 문제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며 “수산계에 정부 영향력을 벗어나 독자 목소리를 내며 자생적으로 살 수 있는 단체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문패 정도는 얼마든지 바꿔 달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수산계가 수산 생태계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며 “여유가 있는 수산단체들이 건전한 NGO가 성장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고 지원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상기후, CPTPP 등 외풍의 강도가 점점 거세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것 하나 고치지 못하는 수산계가 과연 자기 밥그릇을 챙길 수 있을지 의문이 가는 건 당연한 우려다. 정부의 우산 아래 각자도생만을 외치고 있는 수산단체들 속에서 수산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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