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상황서 직원복리기금 내준 직원들에 감사
“5년 후 현업 물러나 사람들 만나며 살고 싶다”
이제 중앙회장 유능한 사람 진출 제도 개선 해야

조성원 前경기남부수협 조합장

 “지금은 덤으로 사는 인생입니다”
 지난 2일 그가 운영하는 충남 당진군 고대면 옥현리 대원개발 석산에서 만난 조성원(73) 前경기남부수협조합장 얼굴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해맑은 미소’ 그대로였다. 3년 전 암 투병을 했던 사람인지 의심이 들 정도로 그의 얼굴은 건강해 보였고 훤했다.

 

지난 2018년 1월, 그러니까 조합장 퇴임을 1년여 앞두고 그는 건강 검진 결과 혈액암(림프종) 진단을 받는다. 청천벽력(靑天霹靂)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로부터 10개월, 그는 항암치료를 받으며 암과 싸웠다. 항암치료는 인간의 인내와 싸우는 처절한 싸움이었다. 그러나 그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10개월 만에 1차 암 완치 판정을 받는다.
 “항암치료는 암 환자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치료에요. 정말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어요”

 한때 호황 등에 탔던 석산개발
 2019년, 그가 항암치료를 끝내고 다시 시작한 사업은 석산 개발사업. 2013년 당진시로부터 10만평 석산개발 허가를 받아 2만평은 이미 개발을 완료했고 현재 개발 중인 3만 8,000여평은 2027년까지 개발을 끝낼 계획이다. 공사장에는 15톤에서 27톤까지 적재할 수 있는 덤프 트럭 300여대가 매일 간단없이 토사와 바위들을 실어 나른다. 그의 석산 개발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충남 아산에 경성산업(주)를 설립하고 서해대교, 평택항 개발 등 석자재 수요가 많았던 시기 석산개발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호황의 등에 탔던 시기다. 그는 요즈음 옛날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했다. 아픔이 삶의 의미를, 일에 의미를 더해줬기 때문이다.

조합장으로 안해 본 것 없다
 조 前조합장 이력은 화려하다. 2007년 2월 박학순 조합장의 중앙회장 출마로 공석이 된 조합장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후 12년 동안 조합장으로서 안 해본 게 거의 없다. 수협중앙회 비상임이사, 수협재단 이사, 경인지역 조합장 협의회장, 중앙회 감사위원, 또 9개월 동안 감사위원장 직무대리 등 조합장으로 해볼 건 다 해 봤다. 뿐만 아니다. 경기도 수산조정위원, 농림수산식품부 중앙수산자원관리위원과 중앙수산조정위원, 평택해양치안협의회 회장, 경기도 장애인 요트협회 회장 등 일일이 다 열거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는 다방면에서 활동을 많이 했다. 조합의 지명도를 높여 조합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또 그는 남을 비방하지 않고 논리적으로 상대를 설득해 수협중앙회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해결사, 조정자 노릇을 하기도 했다. 감사위원장 직무대리를 9개월 가량 하면서 이종구 당시 중앙회장과 강병순 감사위원장 간의 심각한 갈등을 그가 중간에서 조정한 사건은 그의 조정 능력을 보여준 백미로 치부되고 있다. 또 그는 2015년 치러진 제24대 수협회장 선거에서 유력한 후보 중 한사람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는 “왜 수협회장 유력 후보 중 한사람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까지 갔다가 끝까지 완주하지 않고 접었느냐”는 질문에 “지구별과 업종별 조합이 경쟁을 하는데 내가 나가면 지구별이 더 어려워 지겠다고 생각해 그러면 나라도 물러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당시 생각을 털어놨다. 그러면서 “경기남부수협에도 누가 될까 봐 대단히 조심스러웠고 그런 이유들이 결국 회장 출마를 포기하게 했다”고 했다.

 리먼브라더스 사태
 그는 조합장 재직 시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대해서는 리먼브라더스 사태 때라고 했다. “부동산 버블이 꺼지면서 연체율이 14%에 이르고 아파트 건설업체인 희성건설에 대출해 준 돈이 무려 240억원이나 돼 이것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하면 조합이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우리 수협의 자본금이 81억원이었으니까 희성건설에서 돈을 회수하지 못하면 조합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정말 아찔했어요”

당시 조합 손실액은 190억원. 그때 조 조합장이 생각해 낸 게 나머지 공사를 완성시켜 분양하자는 것이었다. 당시 완공률은 62%. 나머지 38% 공사를 하려면 80억원이 필요했다. 중앙회에 얘기해 지주 몫으로 20억원, 조합 직원들 복리기금에서 차입한 27억원, 조 조합장 1억원과 한상효 상임이사 5천만원 등 할 수 있는데까지 모두 긁어모았는데도 28억원 가량이 부족했다. 이때 조 조합장은 창호, 싱크대, 변기 등 기자재 업체들을 불러 협조를 요청하고 수협 보증과 대물 변상을 얘기하며 이들을 설득했다. 이렇게 해서 예상 손실액 190억원을 67억원으로 줄였다. 그는 이때가 조합장 12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특히 “조합 직원들이 직원 복리기금을 쓰는데 동의해 줘 그 고비를 넘겼다”며 “지금도 직원들의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후 조 前조합장은 직원들 복리기금을 2016년 상여금 명목으로 이자까지 다 갚은 것으로 전해졌다.

 역대 조합장을 고문으로
 조 前조합장은 조합장 재직 시 잘한 것이 뭐냐고 묻자 “조합장 선거 후 조합이 분열되는 조합이 많은데 경기남부수협은 역대 조합장을 고문으로 모시고 단합을 꾀했다. 또 화성시에 있는 농식품부 간척지 4만 6천평을 확보해 나름대로 경제사업 기틀을 만들었다”며 “협동조합으로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했다. 조합장이 되면 다시 중앙회장에 출마하겠느냐는 질문에는 “현 제도에서는 출마하지 않을 것 같다”며 “유능한 사람이 중앙회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요즘 매주 오는 수산신문을 열심히 보고 있다”며 “아파서 한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가까운 수협 사람들하고 다시 소통을 시작하고 있다”고도 했다.

 “얼마 전에는 가까운 조합장 몇 사람이 이곳에 다녀갔어요. 앞으로 5년 후에는 현업에서 물러나 만나고 싶은 사람들 만나면서 살 생각입니다”

 아프고 난 뒤 인생을 ‘덤으로 살고 있다‘는 조 前조합장, 아픔이 만들어 준 건지 그의 눈빛에는 옛날보다 더 따뜻함과 여유로움이 묻어 나온다. <문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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