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동 칼럼/문영주 편집국장의 ‘상상일지(想像日誌)’

 

 홍진근 대표님, 수협에 온 지 벌써 2년이 다 돼가네요. 수협이라는 데가 일반 기업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공기관도 아니라서 일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래도 잘 적응하신 것 같습니다. 과정이야 어떻든, 생각보다 이익도 많이 내고 성적이 나쁘지 않더군요. 고생했습니다.
 제가 오늘 편지를 쓰는 것은 옛날 노량진수산시장 때문입니다. 낡은 건물을 걷어내고 그 위에 잔디를 깔아 예쁜 축구장을 만들었더군요. 한강 변과 어울려 확 트인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기도 하고요.

 준비 없이 맞은 노량진수산시장 철거
 그러나 이 자리는 몇십 년 동안 시장 상인들의 한과 꿈이 서려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수협중앙회가 시장 철거를 위해 몇년 간 일부 시장 상인들과 치열한 다툼을 벌이던 곳이기도 하고요. 그래서인지 이 축구장을 보면 그 당시 시장 모습이 겹쳐집니다. 법원에서 명도 집행을 하러 오면 못 나가겠다고 기를 쓰며 막아서던 상인들의 절규가 느껴지곤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얻어낸 이곳은 지금 평화로운 축구장으로 변했습니다. 물론 현재 수협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마치 축구장을 만들기 위해 싸운 것 같은 느낌을 솔직히 지울 수가 없습니다. 갑자기 일어난 일도 아니고 사전에 충분히 예상하고 준비할 수 있는 일인데도 제대로 준비도 못하고 결국 세금 때문에 3년간 동작구청에 이 금싸라기 땅을 빌려준다는 게 전 아직도 이해되지 않아요. 수협중앙회는 시장 철거하는 몇 년 동안 도대체 뭘하고 있었나요? 어차피 철거는 될 거고 철거가 끝나면 뭘 하겠다는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자꾸 일반 기업과 비교하는데 대기업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회사의 명운이 걸린 중요한 문제인데 이렇게 처리했다면 과연 목이 몇 개라도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수협중앙회에서 우리 신문사를 가려면 난 항상 이 길을 지나가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옵니다. “참 아깝다”는 생각이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스며들어요. “이 황금 같은 땅을 저렇게 뿐이 못 쓰나”. 그러면서 나 혼자 머리 속으로 1만5천평 그 드넓은 땅에 그림을 그립니다. 코로나 시대이니까 장소도 널찍하게 만들어 한쪽은 시장에서 사온 수산물을 카트로 가져오면 요리사가 즉석에서 요리해 야외에 가족이나 친지, 연인들이 먹을수 있는 자리를 만듭니다. 사람들이 요리를 주문하기 위해 카트를 끌고 끝이 없이 줄을 서 있는 모습을 머리 속에 그리면서요. 또 한쪽은 시민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는 정자 같은 것도 만들어 보고, 또 다른 쪽엔 드라이브 스루로 회를 사갈 수 있도록 회코너나 회원조합 특산물도 파는 자리를 혼자 그려 봅니다. 1만5천평 땅에는 그릴 게 참 많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천동 청사를 팔아 공적자금을 갚아 수협은행을 자유스럽게 한 뒤 거기서 대출을 받거나 펀딩을 해 서울의 랜드마크 같은 근사한 건물을 여기에 짓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수협은행과 수협중앙회가 들어가고 나머지 자리엔 서울에 있는 해양수산관련 기관이 입주할 수 있도록 해 그야말로 서울 한복판에 멋진 조형물이 어우러진 근사한 수산센터를 만들었다 부숩니다. 용산역처럼 노량진역과 연계해 새로운 상가나 타운을 조성하는 그림도 그리고요. 이런 것 말고도 수산이라는 이미지를 서울시민들에게 확실하게 심어주고 어업인과 수산인이 자긍심을 느낄수 있도록 할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면 이것저것 많은 그림이 그려집니다. 엉터리 같은 그림쟁이가 그려서 그렇지 능력 있는 멋진 화가가 그리면 얼마나 멋진 그림을 그릴까 생각을 하면서 말입니다. 현재 땅값이야 몇천 억원이 안되겠지만 거기에 근사한 빌딩을 지으면 그게 몇조 원 짜리 빌딩이 될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그러다보면 세금이 무서워 이 땅을 이런 식으로 운영하는 게 과연 맞는지, 이런 것을 결정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이 그런 쪽으로 옮겨갑니다. 안타까워서요.

 경계인·이방인도 그러는데...
 나는 오랫동안 수산 언론인으로 지내 왔지만 아직도 경계인이고 이방인입니다. 수산 쪽에서 모든 걸 보고 있지만 직업 상 어쩔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나 같은 사람이 이런 그림을 그리는데 정작 그림을 그려야 할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홍 대표님이 전에 계시던 동원산업 김재철 회장님에게 이 땅이 있다면 어떻게 하실까요. 정말 궁금하지 않나요. 세금이 무서워 지금처럼 동작구청에 빌려줄까요. 나는 절대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100만원을 천만원 짜리로 만들고 천만원 짜리를 몇억, 몇십억, 몇백억원으로 만드는 게 기업인 아닌가요.
 한 가지 더 안타까운 것은 그 땅을 세금 때문에 동작구청에 빌려줬다고 하지요. 그런데 1만5천평, 그 넓은 땅에 수협의 흔적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요. 하다못해 그 넓은 시설에 수협이나 어업인, 수산물, 수협은행을 홍보하는 전자광고판이라도 하나 만들어 놔야 하는 것 아닌지요. 동작구청과 계약을 맺을 때 여기에 이런 전자광고판을 하나 만들겠다고 했으면 동작구청이 그걸 반대하겠습니까. 88올림픽대로나 노들길을 다니는 수많은 차량들이 오다가다 잠시나마 수협과 어업인, 수산물, 수협은행 홍보물을 보게 해 수협에 좋은 이미지를 갖게 한다면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까. 안타깝습니다.

 홍 대표님이 이런 걸 모두 결정하고 책임지는 자리는 아닐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식으로 몰아붙이면 좀 억울한 부분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현재 홍 대표님은 이런 사업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할 위치에 있습니다. 그래서 하는 얘기입니다. 경비를 줄이고 사람을 줄여서 내는 이익은 웬만한 CEO는 다 할 수 있습니다. 100원을 줄여 1원의 이익을 내려는 CEO는 ‘착한 CEO’가 아닙니다. 기존사업을 활성화하거나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 이익을 내야 그것이 의미 있는 이익 아닌가요. 그래야 리더의 아우라도 생기는 거고요. “홍 대표님, 그렇게도 생각이 없으십니까”하는 얘기를 더 이상 듣지 않도록 멋진 그림을 그려 보세요. 아니면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사람에게 권한을 넘겨주던가요. 보는 사람이 답답해서 하는 얘기입니다. 이 편지는 4주 전에 써 놓은 편지지만 대표이사 선출 시기라서 유보했던 겁니다. 할 얘기가 많지만 오늘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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