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신희 여수지방해양수산청장의 여수 등대 이야기
세계 7대불가사의 중 하나인 팔로스등대 55Km 밖에서도 불빛 볼 수 있어
우리나라에는 일본 강권에 의해 1903년 건설된 인천 팔미도등대가 최초

하멜등대

 가수 버스커 버스커의 ‘여수 밤바다’ 노래 가사처럼 여수는 야경이 아름다운 도시다. 그 아름다운 이유 중에 하나가 바닷길을 안내하는 등대의 다양한 불빛들이 한 몫을 하고 있다. 참 묘하게도 등대하면 사람들은 감성적이 되면서 등대에 얽힌 추억들을 떠올리게 된다. 나도 어렸을 때 등대는 실제로 본 적도 없지만 집에 굴러다니던 하모니카로 열심히 연습해서 불던 노래가 등대지기였다. 당시 이 곡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연습하기가 좋아서 계속 불어대다가 집안일은 돕지 않고 놀기만 한다고 엄마한테 싫은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그 등대지기들과 평생을 같이 일하게 될 줄을.

 등대하면 사람들 감성적 돼
 등대를 포함해 선박의 안전한 길잡이 역할을 하는 것이 항로표지이다. 그 종류를 살펴보면 등대나 등부표처럼 빛을 이용하는 광파표지, 색을 이용하는 입표와 부표, 소리를 이용하는 음파표지 등이 있다. 2018년 인천에서 열린 세계등대총회에서는 항로표지의 중요성을 홍보하고 등대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7월 1일을 세계항로표지의 날로 제정한 바 있다.

 등대의 기원은 기원전 280년경 고대 알렉산드리아 항구에서 1km 지점에 위치한 파로스섬에 있는 파로스 등대이다. 세계 7대불가사의 중 하나로 알려진 이 등대는 30층 높이(120m~140m)의 거대한 건축물로서 등대 빛이 너무 밝아 반사경의 불빛을 55Km 밖에서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라틴어로 등대를 뜻하는 pharos의 어원이 될 정도로 이 등대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1307년 대지진으로 인해 등대가 파괴돼 흔적도 찾기 어려웠으나, 20세기 고고학자들의 노력으로 겨우 등대 있던 곳을 발견하게 됐다.
 
 한국의 등대는 불행하게도 대한제국시대 우리나라를 넘보던 열강들의 길잡이 역할을 해주기 위해 시작됐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승리한 일본은 한국 연해에 등대가 없어 불편하다며 등대 건립을 촉구했으며, 그 강권에 못 이겨 1903년 건설된 최초의 등대가 인천 팔미도등대이다. 

 한편, 여수권역에 최초의 등대는 1905년에 건립된 거문도 등대이다. 1885년 영국이 러시아의 남하를 핑계 삼아 거문도를 무단 점거하고 자국 군함과 무역선의 중간기항지로 활용하다가 떠난 후, 일본이 러·일 전쟁중에 자국 군대와 물자를 안전하게 운송하기 위해 설립했다. 이는 남해안 지역 내 최초의 등대로 지난 115년간 꿋꿋이 뱃길을 밝혀주고 있다. 여수 최남단에 있는 솔개같이 생긴 섬 소리도에도 1910년에 건립된 마치 그리스 신전과 같은 느낌의 육각형 콘크리트구조물인 소리도등대가 있다. 등대 주변에는 코끼리바위와 해안의 기암절벽이 어우러져 빼어난 자연경관을 보여주는 천혜의 관광지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소리도등대는 첨단장비를 활용해 항로표지 무인화 작업을 진행중이며, 직원 숙소 및 광장 등 유휴시설은 여수시와 협력해 해양문화 및 시민들의 편의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유인등대 이외에 역사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등대 2곳을 소개하자면 고흥군에 위치한 소록도등대와 여수시 해양공원에 있는 하멜등대를 들 수 있다. 소록도등대는 1937년 높이 7.5m 연와조로 지어졌으며, 고흥군 녹동항을 통항하는 선박들의 항로표지 역할을 하다가 현재는 기능이 폐지돼 시설물만 여수지방해양수산청에서 관리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소록도 등대는 일제강점기 당시 한센병 환자들을 강제 동원해 건립한 인권유린의 증거이기도 하다. 어린 사슴을 닮은 조그만 섬 소록도는 한때 한센병 환자들과 병원 직원들만의 섬이었으나 2009년 교량이 설치되고 아름다운 경관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이중 가장 특별한 손님으로는 1984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소록도를 방문해 원생들을 위로한 바 있다.

 소록도 등대 일제 인권유린 아픔도
 여수 해양공원에 있는 하멜등대는 우리나라를 유럽에 최초로 소개했던 네덜란드인 핸드릭 하멜의 이름을 딴 등대로 높이 10m의 홍색 원형콘크리트 구조물로서 2005년에 설립됐다. 하멜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선원으로 1653년 일본 나가사키로 항해중 난파해 일행 36명과 함께 제주도로 표착했다. 이후 한양, 강진, 여수에서 억류생활을 하다가 1666년 일본으로 탈출 후 네덜란드로 귀국했다. 그는 한국의 지리, 풍속, 정치, 군사 등 억류생활 14년간의 기록을 유럽에 최초로 소개한 “하멜표류기”를 썼다. 하멜이 이 책을 쓴 이유는 동인도회사에 제출해서 그동안 받지 못한 봉급을 받기 위해서였다. 안타깝게도 그는 봉급은 받지 못했지만 이 책은 당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고 전해진다. 등대 인근에 하멜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전시관과 네덜란드에 세워진 것과 동일한 크기의 동상이 있다. 낮에는 푸른 바다와 빨간 등대가, 저녁에는 여수 밤바다 야경과 함께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으며 주변에는 해상케이블카, 오동도와 등대, 해양엑스포장 등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등대는 항로표지를 대표하는 시설로 항해가 시작된 이래 인류문명과 운명을 같이 하고 있다. 고대부터 현재까지 해양문명간 교류의 상징이자 역사적 희로애락을 품고 있는 소중한 인류의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해양기술이 발전하면서 등대의 역할이 점점 줄어들고는 있지만 문화체험의 장이자 힐링의 장소 등 그 용도가 다양하게 변모하고 있다. 난파선이 등대 불빛을 발견했을 때 느끼는 감동과 같이 등대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영감을 주고 있다. 이렇듯 역사와 문화를 품은 등대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선한 영향력과 무한변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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