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장회장을 노량진시장 경매장 소환
석천 호수 앞 호림 빌딩 ‘수산 타운’으로 개조
우리나라에선 처음으로 신라호텔, 이마트 등 납품

 

“그래 참치는 해체했어. 아귀는 어떻게 하고…, 간은 떼고 대창은 그대로 붙여둬. 납품할 것도 꼼꼼히 챙겨 보고. 지금은 식품안전이 최고야. 법대로 해야 돼”

 우리나라 수산물 유통가 전설로 알려진 장공순(78) 유진수산 회장이 다시 현업에 복귀했다. 20년 만이다. 그동안 사업을 아들들에게 물려주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섰으나 코로나로 유통 환경이 변하자 그는 최근 일선 복귀를 선언했다.

코로나19로 다시 전면 나서

장 회장은 군대를 제대한 뒤 26살부터, 그러니까 60년 후반부터 서울역, 남대문과 함께 서울의 3대 수산물 유통시장으로 꼽히던 동대문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수산인이다. 그는 우리나라 수산물 유통가 전설로 알려진 홍중표 前강동수산 회장, 조강호 前삼호물산 회장, 유인국 청해수산 회장 등과 함께 1960년대부터 2000년 초까지 서울의 수산물 거래를 주도했다. 국내에 처음 참치를 공급했으며 삼청각, 오지남 등 내로라하는 국내 요정에 처음 납품을 시작한 사람이 장 회장이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때에는 청와대에도 그가 구입한 수산물이 들어갔다. 그는 까다롭기로 유명한 신라호텔과 롯데, 이마트 등 대형 유통업체에 처음 납품을 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현장에서 뒤로 물러선 것 건 2000년 초. 그는 아들들이 이 일을 이어서 해줬으면 하는 바램에서 그들에게 업무를 나눠서 줬다. 큰아들에게는 부천의 가공공장과 마트, 노량진수산시장 내 유진수산을, 둘째 아들에게는 잠실 석천호수의 앞 일식당인 ‘호림’을 맡아 운영토록 했다. 뒤에서 멘토 노릇을 하면서 이들의 활동을 지원하면 승계작업이 잘 될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아들들은 수산물 유통 가공업보다는 최근 트랜드에 맞는 사업을 하고 싶어 했고 장 회장은 이들의 활동이 성에 차지 않았다. 게다가 코로나19가 경영을 어렵게 하면서 장 회장을 다시 일선으로 소환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건물을 수산물 전문 타운으로

그는 현업에 복귀하자마자 잠실 석천호수 앞에 있는 호림 건물을 수산물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수산 타운’으로 만드는 구상을 하고 있다. 상권이 좋은 금싸라기 땅이니만큼 월세만 받아도 상당한 수익을 얻을 수 있는데도 그는 생선초밥을 만들고, 수산물을 판매하겠다고 했다.

 1층엔 테이크아웃 전문 커피점처럼 생선초밥과 회를 파는 오픈 가게를 만들 계획이다. 여기서 생선초밥을 사가지고 건물 2층 발코니나 빌딩 내 야외 편한 자리, 석천호수 등에 앉아 시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수산물유통가공협회장으로 있을 때 벌인 ‘100만인 생선초밥먹기 운동’이 끝을 맺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아 있는 듯하다.

 2층에는 기존의 호림 일식당을 개조해 새로운 고급 일식당으로 만들고 일식당 옆에는 민물장어집이 들어서게 할 계획이다. 현재 2층에 있는 수산물 판매 마트에는 부천 공장에서 만든 각종 수산물 가공품과 현장에서 직접 손질한 회 등을 판매하겠다고도 했다. 그가 개발해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가정간편식인 ‘찐 굴비’도 여기서 손님과 만난다. 테이크 아웃을 할 수 있는 오픈 초밥집, 일식당, 민물장어집, 각종 수산물을 파는 마트 등이 들어서면 ‘수산 타운’의 구색이 갖춰질 수 있다는 게 그의 구상이다. 그는 “사람의 왕래가 많은 곳이기 때문에 한번 명성을 얻으면 명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아들은 연어 등 해외 부문만 

 “그동안 일을 직접 안 해서 산지 중도매인들과 연락을 못했어요. 다시 일을 시작한 만큼 다시 산지 네트워크를 복원할 생각입니다”

 장 회장은 “산지에도 다니며 좋은 물건을 구입해 볼 생각”이라고 했다. 한때 부산공동어시장에선 그에게 중도매인 허가를 주겠다는 제안도 있었다고 한다. 큰 손이라 시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그는 이를 받지 않았다. 현역서 물러나기로 했는데 이를 받는 게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그가 다시 부산을 찾을 생각이다. 현역에 다시 복귀한 만큼 그동안 쓰지 않았던 네트워크를 복원하고 다시 에너지를 모아 마지막 불꽃을 피우기 위해서다.

 그는 “연어 수입 등 해외 수산물 수입은 여전히 큰아들이 계속 맡아서 하고 난 국내 수산물만 취급할 생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부천 공장을 최대한 가동해 호텔, 대형 유통마트 등에 납품을 확대할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19로 어려워진 수산물 유통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나서는 게 필요하다는 까닭에서다.

그는 “실패를 두려워하면서 사업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법대로’, ‘원칙대로’를 강조했다. 이 말은 그가 기업경영에서 가장 중심에 두는 단어다. 한 때 직원을 잘못 채용해 곤혹을 치루기도 했지만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게 이 부분이라는 생각에서다.

산지 네트워크 복원

지난 30일 오후 1시쯤 잠실 호림 건물에 나타난 그는 찬 기운이 도는 2층 발코니 식탁에서 노량진수산시장 경매에서 사온 냉장참치를 시식했다. 국내에서 잡은 참치 맛을 알기 위해서다. 그리고 마트 판매 진열장에서 손수 생선 초밥을 가져 와 간단히 점심을 때운 뒤 1층으로 내려갔다. 월세 1,500만원을 받던 가게 ‘설빔’이 나간 자리에 생선초밥집과 수산물 판매장을 만들기 위해서다. 호사를 부릴 수 있을 만큼 재산이 많은데도 그의 점심은 너무 검소했다.

 그는 1층에서 기다리던 가게 리모델링 업자가 가져온 설계 도면을 본 뒤 도면과 현장을 다시 체크했다. 그러면서 부산공동어시장에 전화를 하는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예전처럼 쩌렁쩌렁했다. “그래 병어랑 좋은 물건이 많이 나온다면서요. 좋은 게 있으면 좀 보내줘요. 내가 조만간 부산에 한번 갈게요”

 코로나19가 수산물 유통가의 전설을 다시 노량진수산시장 경매장에 소환했다. 그가 이 난국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또 ‘수산 타운’이라는 그의 새로운 구상과 도전이 어떤 결실을 맺을지 유통가의 관심이 모아질 것으로 보인다.<문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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