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이런 회사 있네요-한번 생각해 봅시다/문영주 편집국장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 대부분은 아마 진급하는 재미에 회사를 다닐 것이다. 진급하면 속된 말로 명예도 얻고, 월급도 더 많이 받고, 여러 가지 혜택도 누릴 수 있다. 이제 나도 부하도 거느릴 수 있고 내 뜻대로 업무도 추진해 볼 수 있다. 게다가 성취감 등이 자아실현으로 이어지면서 얻는 정신적 만족감은 다른 것과 바꿀수가 없다.
여성들에게 좌절감을 안겨 준 유리천장이 깨지고 사회 곳곳에서 여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인사 혁신이 이뤄지고 있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여기에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40년 가까이 공익 법인으로 있으면서 아직까지 사내 출신 사장을 한 번도 배출하지 못한 기이한 회사가 있다. 바로 수협노량진수산주식회사(이하 법인)다.

수도권 최대 소비지 도매시장

이 회사는 71년 서울시가 노량진에 중앙도매시장을 개설하면서 시장 운영과 관리를 위해 만든 회사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전국에서 위탁된 다양한 수산물을 경매 또는 정가ㆍ수의매매로 수도권에 분산하기 위해서다. 수도권의 수산물 공급 기지인 셈이다. 이 회사에는 현재 정규직 91명, 계약직 18명 등 113명이 있다. 이들이 연간 처리하는 물량은 약 7만톤. 법인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이 회사가 처리한 연간 평균 물량은 6만 6,980톤, 금액으로는 평균 3,194억 9,200만원 어치다. 그러니까 연근해어업 생산량이 100만톤이라고 봤을 때 약 6% 가량이 이 시장에서 거래됐다는 얘기다. 또 이 시장에는 중도매인 183명, 매참인 4명, 소매상인 582명, 기타판매장 150명, 하역원 등 기타종업원 2,100여명 등 총 3,000여명이 종사하고 있다. 숫자도 많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기능과 업무를 가진 곳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회사 직원들은 진급에 대한 희망이 없다. 회사가 설립된 지 40년 가까이 됐는데도 아직껏 사내 출신 사장을 한명도 배출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1983년 노량진수산주식회사가 민간법인으로 출범한 이후 현 안재문 사장까지 18대 사장이 취임했다. 그러나 이 중 이 회사 출신 사장은 한 명도 없다. 모두 민간인, 정치인, 은퇴한 정부 관계자, 수협 임직원 등이 자리를 차지했다. 심지어 시장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수협 신용부문 부장도 사장으로 왔다 갔다. 수협이 인수한 2002년 이후 20년 동안에도 전혀 변한 게 없다는 얘기다. 오너 직접 경영이 아닌 데도 40년 가까이 자체에서 사장을 발탁하지 않은 회사 모습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한 법인 직원은 “우린 사장이 누가 오는 지 관심이 없다”며 “수협이 알아서 내려 보낼 텐데 관심을 가지면 뭐 하냐”고 했다. 그러면서 “우린 쭉정이”라며 자학적 언어들이 튀어 나왔다. 한 중간 간부도 “사장도 낙하산. 감사도 낙하산, 사외 이사도 낙하산”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냉소적인 분위기를 전했다.

‘내부 직원 출입금지’ 푯말만

낙하산 인사의 폐단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우선 문제가 되는 게 비전문가로 인한 부실 경영이다. 시장을 모르는 사람이 와서 시장을 운영하는 것은 부실을 만들겠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시장이란 오랜 관행이 굳어진 곳이다. 정권마다 수산물 유통구조를 개선하겠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성공한 정권이 없을 정도다. 오래된 관행이 아직도 판을 치고 있는 곳이 시장이다. 그런데도 낙하산 인사들은 시간만 때우고 자리만 즐기고 간다. 애당초 시장의 문제를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없는 사람들이 왔다 가는 곳이 됐다. 그 사이 직원들 의욕은 사라졌다. 백번 열심히 해 봤자 올라 갈 길은 뻔 한데 열심히 일하는 것은 바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태하고 무사안일주의에 빠지는 악순환도 여기서 비롯된다. 이런 저런 이유로 낙하산 인사를 앉혀 놓고 시장을 개선하겠다고 하면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라는 데 이의를 달 시장관계자가 있을까. 그런데도 머잖아 또 다시 낙하산 인사가 단행될 기세다. 안재문 사장이 7월 15일 물러나면 그 자리에 누가 올 거라는 얘기가 벌써부터 파다하다.
한 수산계 인사는 “시장이 시장답지 못하다”며 “가장 약한 고리인 자회사 사장 자리는 아무나 해도 된다는 생각을 주주가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혀를 찼다. 그러면서 “그 이전엔 몰라도 수협이 인수한지 20년이 됐는데 아직도 내부에서 사장을 발탁하지 않은 것은 전적으로 주주에게 책임이 있다”며 “이제 사장 자리를 거기서 종사한 직원들에게 돌려 줄 때가 됐다”고 했다. 한 수산계 연구기관 연구원도 “조직의 힘은 직원들한테 나오는 데 직원들 홀대하면서 시장과 조직 발전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며 “이제 새로운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주의 책임을 강조했다.
하청업체 직원도 아닌데 20년 가까이 사람대접을 하지 않은 주주가 앞으로 수협의 대역사가 걸린 노량진수산시장 사장 자리에 ‘내부 직원 출입금지’ 라는 팻말을 치워 버릴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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