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년 수산제조업 외길 걸어 왔는데..."
지방자치단체 수산식품 제조업체 규제 너무 심해
해결하려면 국회뿐이 없는데 수산전문가 의원 한명도 없다

수산계에선 우리나라 수산물 유통가의 전설로 3~4사람을 꼽는다. 前강동수산 회장인 홍중표(77) 전국수산물도매법인협회 회장과 조강호 전 삼호물산 회장, 노량진수산시장서 오래 동안 중매인을 한 유인국(76) 전 청해수산 회장, 장공순(76) 유진수산 회장이 바로 그들이다. 이 사람들 공통점은 하나같이 자수성가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젊었을 때 시장에서 일을 시작해 시장에서 일생을 보냈으며 한때 우리나라 수산물 시장을 쥐락펴락하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 중 현직에 남아 있는 사람은 장공순 유진수산 회장 한 사람뿐이 없다. 그는 몇백억원을 가진 재력가로 알려져 있다. 부천에 유진수산이라는 수산물 가공공장과 함께 인근 땅을 2,000여평 가지고 있다. 또 잠실 석천호수 옆에 있는 호림 일식당과 함께 인근 금싸라기 땅 천여평도 그의 소유다. 고향인 하남에 있는 땅만 해도 2만평이 넘는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새벽 1~ 2시, 노량진수산시장에 나가 수산물 경매장을 둘러본다. 장 회장은 60년대 말부터 청와대를 비롯해 삼성, 신라호텔 등 우리나라 내로라하는 곳에 한해 100억 안팎의 수산물을 거래하던 유통가의 ‘큰손’이었다. 그는 이를 유지하기 위해 어느 누구보다 일찍 시장을 찾았고 그것이 55년간 지속됐다. 그런 습관이 아직도 남아있는 모양이다. 그는 “아들들이 이제 시장에 나가지 말라고 하는 데 그게 안 된다”고 했다.

더 이상 공장 운영할 수 없어

그런 그가 최근 주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식품의 안전성을 확보해주고 상품 가치를 높여주는 HACCP 인증서를 반납해 버린 것이다. HACCP은 식품위생법에서는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이라고 한다. 식품의 원재료 생산에서부터 최종소비자가 섭취하기 전까지 각 단계에서 생물학적, 화학적, 물리적 위해요소가 해당 식품에 혼입되거나 오염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위생관리시스템을 말한다. 그러니까 완전한 식품을 생산하는 식품업체에게 주는 정부의 인증서다. 그런 인증서를 반납한 이유가 뭘까.

그는 ‘HACCP 인증서 반납 사유서’에 “유진수산은 법은 법대로 지키자는 사훈 아래 55년 동안 수산물 제조업만을 해 왔다”며 “그러나 지금은 악의적인 투서로 인한 막대한 영업손실, 공익제보를 위장한 백여건의 악성제보, 제조업을 할 수 없게 만드는 높은 장벽의 규제, 아니면 말고 식으로 실체 없는 악성글을 유포하는 언론사 만행 등 이런 무책임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 때는 직원이 300명이었던 이곳이 지금은 30여명뿐이 안 남아 있다”며 “밀폐된 창고와 부대시설이 필요한데도 당국의 규제로 HACCP은 물론 제조업 운영이 어려워 부득이 HACCP을 반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직원 투서에다 구청 철거명령 등 겹쳐

장 회장은 2017년 12월, 한 직원 때문에 곤혹을 치뤘다. 5년전 유진수산에 입사한 이 직원은 식약처, 구청위생과, 언론사 등에 투서를 하고 심지어 이마트, 롯데마트 등 주요 거래처 20여 곳에 악의적인 내용을 보내 영업을 방해했다. 회사 사진을 찍어 문제가 될 수 없는 것들을 당국에 고발했다. 또 글자 한자 틀렸다고 유진수산 물건을 파는 회사까지 고발하고 롯데마트에 납품한 물건 중 그림이 훈제연어 그림이 아닌 것 같다는 등 100여건이 넘는 민원을 구청에 내기도 했으나 이것은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장 회장은 이것까지는 울화를 참으며 버텼다. 그러나 최근 관할 구청에서 공장을 운영하기 위해 지을 수밖에 없었던 가설건축물 철거 명령을 내리자 “더 이상 제조업을 하지 말라는 얘기로 밖에 생각할 수 없다”며 인증서를 반납해 버린 것이다. 55년 동안 수산물 제조업만을 해 왔고 제조공장에서 꼭 필요한 시설을 하기 위해 지어 논 가설건축물을 철거하라고 하면 더는 제조업을 할 수 없고, 이런 환경에서 굳이 공장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현재 인천 계양구 서운동 공장은 건폐률이 20%도 안 되는 생산녹지로 터무니없이 용적률이 적어 당국의 허가로 부자재, 자재창고 및 냉동고를 가설물 허가 후 사용했다”며 “이제 와서 가설물 용도에 맡지 않는다는 이유로 철거와 과태료 고지서를 보내면 제조업을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조업을 하기 위해서는 냉동 · 냉장 창고, 부자재 창고, 생산 전처리실, 가공실, 포장실, 직원들을 위한 탈의실 및 휴게실 등 각 공정별 부속건물이 필요하다”며 “주위의 모든 제조업들도 가설물을 신청해 부족한 창고 및 기타 제조업에 필요한 공간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고도 했다.

55년 동안 수산물 제조업을 해오면서 오직 수산물만을 위해 살아왔다고 생각한 그에게 이번 사건은 충격, 그 자체였다. 장 회장은 그 동안 수산식품 개발과 함께 수산물 홍보에 누구 보다 앞장섰다. 공장이 있는 계양구에서 사비를 들여 ‘100만명 초밥 먹기 운동’을 했으며 소외 계층을 위한 무료 밥상 등 수산물 홍보와 봉사 활동을 하기도 했다.

“어려움 해소 위해 내가 마중물 되겠다”

그런 만큼 그가 받은 충격은 상당해 보였다. 그는 “나 같은 사람도 이런 상황을 맞는데 나보다 못한 사람은 얼마나 공장을 운영하는 게 힘이 들겠냐”며 “대통령은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고 하는 데 지방자치단체에서 이런 식으로 일자리를 죽이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어려운 수산물 제조업체들이 나와 같은 상황을 겪지 않기 위해서라도 수산물 유통 관련법은 반드시 손질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어려움을 풀어줄 대안으로 수산전문인 국회 진출을 얘기했다. 그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제 수산을 잘 아는 수산전문가가 국회의원이 돼야 하는 데 수산전문가나 행정가가 국회에 한명도 없다”고 했다.

장 회장은 “이제라도 수산인들이 한 목소리를 내 수산전문가가 국회의원이 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줘야 한다”며 “국회의원 한명 배출하지 못하는 수산계가 돼선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만간 수산계 원로들을 만나 얘기를 해보겠다”며 “미약하지만 나도 힘을 보태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업계가 좋아지면 수산계에 사람이 몰릴 것이다”며 “한평생 수산업을 해 왔던 사람인만큼 제가 마중물이 되겠다”고 했다. 55년간 오직 수산물만을 위해 살아온 그가 자괴감을 느끼며 제조업을 떠나려는 이 상황을 수산인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문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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