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문해남 전 해양수산부 해양정책실장(김앤장법률사무소 오션팀 고문)

 
지난 5월에 완도에 다녀왔다. 내게는 오랫동안 별러 온 매우 뜻깊은 여행이었다. 사실 첫 완도행이었다. 해양수산부에 근무하면 출장이든 여행이든 몇 번은 갔을 법 한데 그런 기회가 없었다. 


완도, 그 중에서도 청해진 방문은 내가 꼭 갚아야 할 부채같은 것이었다. 1995년 1월, 해외 유학에서 돌아 온 내게 맡겨진 보직이 해운항만청 조직담당이었다. 당시 국장이, 해양수산부를 만들 마지막 기회라고, 같이 노력해보자고 앉힌 것이다.

그로부터 2년간 나는 담당 사무관으로서 국장의 지시를 받아 바다의 날을 만들고, 제1회 바다의 날 대통령 치사 초안을 쓰고, 해양수산부 필요성을 담은 자료들을 만들고, 제1회 바다의 날 대통령 발표에 환호하고, 해양수산부 조직을 설계하고 첫 국감 업무보고와 자료를 만드는 여러 일들을 했다. <br>이러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언급하고 활용한 것이 장보고대사와 청해진, 최남선의 ‘바다와 조선민족’이었다. 그렇게 많이 얘기했으면서도 한 번도 청해진에 못 갔으니 그 부채의식은 매우 큰 것이었던 것이다.

청해진과 신길웅

장도 다리를 건너 청해진으로 들어가면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한 분이 뇌리를 스쳐 갔다. 신길웅! 아, 신길웅! 갑자기 눈시울이 시큰거리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를 조직담당으로 불렀던, 당시 해운항만청 기획관리관이 떠 오른 것이다.

해양수산부를 만들기 위해 그 분과 같이 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두 페이지에서부터 수십 페이지에 이르는 여러 종류의 자료를 만들고 청와대와 국회, 영향력있는 오피니언 리더들을 찾아다니고 바다의 날 행사 때는 열린음악회를 유치해 보려고 방송국 국장에게 가서 조아리기 까지 했던 일들.

나는 단언컨대 이분이 없었으면 해양수산부는 만들어지지 않았으리라고 확신한다. 그 분은 해양수산부가 만들어진 후 중앙해난심판원(당시) 원장으로 계시면서 초창기 해양수산부가 자리잡는데 애를 쓰시다가 과로로 쓰러져 영영 못 일어나고 말았다. 우리로서는 아주 큰 손실이었다.

청해진을 돌아보고 나오는 내내 가슴 깊이 묵직한 통증 같은 것이 나를 눌렀다. 우리가, 내가 오랫동안 그 분과 그 열정을 잊고 있었구나. 많이 죄송하고 많이 그리웠다.

완도군과 해조류

완도를 방문했을 때 마침 장보고수산물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그런데 군 단위 축제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내가 본 어느 축제보다도 주제의식도 강했고 다양하되 허접하지 않았으며 사람들에게서도 자부심이 느껴지고 알리고 싶은 의욕이 충만해보였다.

사실 완도군이 국제해조류박람회를 한다고 할 때부터 관심이 있었고 가보고 싶었다. 시간도 안 맞고 거리도 멀어서 결국 못했지만. 해조류전시관 등을 돌아보면서, 군단위에서 이렇게 해조류 등 수산물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기가 쉽지 않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조류는 이제는 건강식품으로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김 한 품목으로 5억달러 넘게 수출하고 있지 않은가. 이 시작에 완도군이 있다는 생각이다. 중앙정부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완도군과 군민들에게 감사와 존경심이 절로 생겨났다.

후기

 2박을 하고 돌아오는 길은 오랜 숙제를 한 후련함과 새로운 숙제를 또 받은 부담감이 같이 있었다.

완도를 다녀 온 후 해수부 간부들에게 두 가지를 부탁했다. 신길웅원장님에 대한 훈장이나 장보고대상 같은 추서 추진(물론 돌아가셨을 때 훈장이 추서되었지만)과 내년 바다의 날에 완도군에 대한 기관표창이다. 단순히 립서비스가 아니고 열심히 하는 곳을 더 격려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열을 올렸다.

장보고수산물축제 같은 것이 서울 한복판에서 열리면 얼마나 좋을까? 돈이 너무 많이 들려나? 전복과 해조류 전문식당을 완도군과 출향인사들이 힘을 합쳐 서울과 대도시에 좀 고급스럽게 내면 어떨까? 잘 되지 않을까? 앞으로 두어 번은 더 가야 할 것 같다, 완도에.

저작권자 © 수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