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누가 망각의 동물이라 했는가. 불과 1년 전, 난 ‘수산신문의 작은 소망’이란 제목으로 이 자리에 칼럼을 썼다. ‘당찬 신문’을 만들겠다며 이번만은 정말 새빨간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수산계 생태계를 바꿔 놓고 싶다고도 했다. 그러나 난 이런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1년을 살았다. 어느새 ‘양치기 소년’이 돼 버린 나를 보면서 또 한해를 시작한다.

‘양치기 소년’이 돼
지난해에는 국내외적으로 역사적인 일들이 많았다. 국내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되고 적폐청산이 계속되고 있다. 포장된 권위와 갑을, 수직적 관계가 수평적 관계로 이동하고 있다. 사회 전반의 지형이 바뀌고 있다.
미국도 역시 마찬가지다. 대부분 언론들이 힐러리 클링턴이 이길 거라고 했지만 결과는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 승리였다. 이후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는 세계인의 동의 없이 세계 질서를 바꾸려 했다. 최근에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발표하면서 중동의 화약고에 불을 붙였다. 평화와 포용의 아이콘처럼 보였던 ‘세계의 대통령’이 ‘미국의 대통령’이 된 것이다. 불란서는 젊은 대통령이 나왔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집권 2기 기반을 다진 뒤 ‘빅2’의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또 이슬람 무장단체인 IS가 터전을 잃었고, 바닥까지 내려갔던 아베 일본총리가 김정은 덕분에 기사회생해 정권 재창출을 만들어 냈다. 게다가 북한 김정은은 세계의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핵 도발을 계속하고 있다. 그렇게 쏟아지는 뉴스 속에서 우리는 한 해를 보냈다.   

그러나 수산신문은 변한 게 없다. 당초 신문을 창간할 때 부리던 호기는 사라지고 ‘힘 있는 신문’은 ‘힘없는 신문’으로 변질됐다. 광고와 신문 몇 부 때문에 진실 앞에서 눈을 감았으며 기획기사는 커녕 들어오는 자료마저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현장을 찾지도 않았다. 또 권력 앞에서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마땅한 취재 기자가 없어 일년 내내 기자 구인광고를 내야 하는 상황도 변하지 않았다. 또 연근해어업 생산량이 60년 만에 100만톤 이하로 떨어졌는데도 심층취재를 통해 무엇이 원인인지 찾지 않았고 외부에서 일괄적으로 전달하는 자료에 의존했다. 신문 스스로 존재 이유를 없앤 것이다.

수산, 지금 경계선에
솔직히 지금 같으면 내 놓고 말하는 게 부끄럽다. “이러려고 대통령이 되려고 했는지 모르겠다”는 박근혜 전대통령 얘기가 아니라도 “이러려고 신문을 만들려고 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다. 수산신문이 수산업 발전에 어떤 기여를 했는가. 참으로 한심하다.

수산의 미래는 두가지다. 하나는 자원난으로 바다가 황폐화되는 절망적인 상황이고 다른 하나는 풍요로운 바다다. 지금 우리 바다는 ‘절망과 풍요’의 경계선에 서 있다. 앞으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바다의 미래는 결정된다. 지속적인 생존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바다 환경을 훼손하지 않고 친자연적, 친환경적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바다모래를 채취하기 위해 바다 환경을 훼손하는 그런 일을 해서는 절대 안 된다. 당장은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영원히 죽는 길이다. 자연의 섭리를 거슬러 먹이사슬을 끊는 ‘무자비한 학살’도 안 된다. 또 수산물이 무주물이라는 이유로 생기는 갈등, 지역, 집단이기주의. 정부의 방만한 수산정책, 관료주의적인 수산단체들, 수산계에 만연해 있는 지역, 학연 패거리 등도 수산발전을 위해선 경계 대상이다.

이중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유능한 인재 유입을 막는 진입장벽이다. 故김영삼 대통령 말이 아니더라도 ‘인사는 만사’다. 모든 것은 사람이 만든다. 그런데 수산은 아직도 자기 집이라고 외부 사람은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수산계 가장 대표적 업체인 동원산업의 인재 등용을 한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김재철 회장은 동원그룹의 모기업인 동원산업 사장에 삼성에 근무했던 이명우 사장을 영입했다. 그 동안은 모두 대부분 수대 출신이 맡던 자리다. 그런데 그는 깐깐하기로 유명한 김재철 회장 밑에서 지금 몇 년을 보내고 있다. 능력이 없으면 기업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해양수산부, 수협 모두 외부 영입에 인색하다. 같은 해양수산부 안에서도 해운항만 쪽 출신이 들어오면 수산을 홀대한다고 못 들어오게 막고 있다. 수산이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수산신문 설 자리는?
이런 상황 속에서 수산신문의 설 자리는 어딜까. 전문지의 기능은 무엇일까. 고해소에서 난 무엇을 얘기할 까.
신부님 앞에서 고해(告解)도 제대로 못하는 신도는 그래도 고해소를 찾는다. 잘못을 빌고 새로운 생각과 가치를 만들기 위해서다. 올해만큼은 정말 변하고 싶다. 수산계 변화를 요구하면서 정작 자신은 변하지 못하는 위선적인 작태를 더 이상 보이고 싶지 않다. 이런 간절함이, 절실함이 변화를 만들어 줄 거라는 희망 속에서 또 새해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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