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多事多難)이란 말 싫은데…

 
난 다사다난(多事多難)이란 말을 싫어한다. 사전적 의미도 그렇지만 왠지 음침하고 희망적이지 않다. 또 연말이면 너 나 없이 쓰는 말이 바로 이 말이다.

그러나 올해는 어쩔 수없이 이 말을 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정말 다사다난한 한 해였기 때문이다. 촛불집회, 대통령 탄핵, 청와대를 떠나는 대통령, 경호차, 경찰 오토바이, 그 뒤를 쫒는 취재 차량, 서울 한 복판에서 벌어진 영화 같은 일이다. 그 뒤 대통령 구속, 문재인 대통령 당선 등 정치 일정이 숨 가쁘게 이어졌다. 또 김정은의 도발이 계속되면서 트럼프대통령과 김정은 사이에서 벌어진 ‘말들의 전쟁’은 한반도를 전쟁의 공포에 몰아넣었다. 우리 국민은 일촉즉발의 위기 앞에서 전쟁의 공포에 떨어야 했고 특히 아들을 군대 보낸 부모는 속이 타들어 갔다. 그리고 이 위기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 밖에도 적폐를 만든 권력의 꼭지에 있던 사람들의 추락이 계속되고 있다. 지금도 활화산에선 뜨거운 용암이 솟구치고 있는 모양새다.

이런 와중에도 수산계는 돌부처처럼 끄떡도 안 했다. 60여년 만에 연근해 수산물 생산량이 100만톤 이하로 떨어졌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다. 원인이 뭐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다음 액션이 없다. 태스크포스도 구성하고, 장기적인 계획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해양수산부가 이런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우리는 모른다. 정말 큰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민물장어 의무상장 문제도 그렇다. 어렵게 만들어 6월 3일 시행키로 했지만 아직껏 시행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민물장어양식수협은 정부가 공표했으니까 시행될 것이라 생각해 17억여원을 투자해 위판장을 만들어 직원까지 뽑아 놓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정부가 하는 일은 분쟁이 생기면 가르마를 타 줘야 한다. 그러나 지금 해양수산부는 오히려 분쟁을 조장하고 있다.
연안 어민들 갈등 역시 마찬가지다. 혼획 비율을 놓고, 또 수산자원관리수면 지정을 놓고, 치어 크기를 놓고, 집어등 밝기를 놓고 지역 간 어민 간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불법어업은 없어져야 한다고 큰 소리 치면서 다른 한 쪽에서는 불법어업을 방치하고 있다. 한ㆍ일어업협정이 체결되지 않아 대마도 부근에서 고등어를 잡는 대형선망은 극심한 어획부진으로 부도가 나는 업체가 한둘이 아닐 거라는 얘기가 나오지만 정부는 보이지 않고 있다.
그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오직 자기들 인사뿐이라는 게 어민들 얘기다. 그러나 그것도 제대로 안 되고 있다. 수산업과 어민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외부서 능력 있는 사람을 받아야 하는 게 정석이다. 그것이 바른 생각이고 바른 행동이다. 생물학적으로도 동종교배나 근친상간은 열성을 만들 가능성이 많다. 산업이나 예술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시각이 있어야 발전한다. 그런데 지금 해양수산부는 외부 사람 진입을 막고 내부 카르텔을 이용해 입신출세하려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수산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 이유다.

수협 역시 마찬가지다. 관료주의 같은 견고한 벽이 허물어지지 않고 있다. 노량진수산시장 문제도 그렇다. 지금 노량진수산시장은 현대화 시장으로 지은 지 2년이 다 되간다. 그런데도 시장은 여전히 2개다. 한 쪽은 옛날 시장, 한 쪽은 신시장, 모양만 이상하다.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협상 돌파구를 못 찾는 건 억지도 있지만 절실함이 없기 때문이다. 반드시 해야 되겠다는 생각 대신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나마 바다모래 채취 반대는 올해 수협으로선 의미 있는 일이다. 옛날부터 바다모래 채취는 해양수산부 지방청장들도 꺼리는 업무다. 자칫 잘못하면 구설수에 휘 말려 자리보전을 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수협이 김임권 회장을 중심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데다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면서 바다모래 채취가 부당하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알려줬다. 수협이 왜 있어야 하는지 정체성을 보여줬다 . 시위 과정에서 수협은 동질감을 회복했고 중앙회와 일선 수협은 하나가 됐다. 협동조합의 미래 가능성을 보여준 ‘착한 사건’으로 평가해도 지나침 없다.
산하단체 역시 올해 무엇이 변했는지 모른다. 산하단체장 몇 사람이 들고 날 뿐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아직까지는 내용은 말할 것도 없고 외형상으로도 변한 게 없다. 수산계는 그냥 그렇게 한해를 마감하고 있다.

지난해 말 촛불집회가 시작됐다. 촛불을 든 사람이나 촛불 집회를 보는 사람이 촛불을 보고  느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마 희망이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엄동설한에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나오면 정의가 강물처럼 넘쳐 흐를 거라는 희망이 있었을 것이다. 올해 다사다난의 출발점에는 광화문을 환하게 밝힌 그 촛불이 있다. 굳은살이 박여 외부 자극에 둔감한 수산계 변화를 위해 이제 누군가 촛불을 들 때가 된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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