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먹거리 제공하는 생산자 보호받을수 있어야”
의무상장제 입법 취지 무시하고 정부 왔다갔다
"중간 유통상인 농간 더 이상 좌시해선 안 돼"

 
1998년 김영삼 정부가 규제개혁 차원에서 폐지한 수산물 의무상장제가 지난해 말 민물장어라는 특정 품목에 한해 복원됐다. 규제 개혁이 시대의 대세로 자리 잡고 있는 마당에 유통을 강제 규제하는 법(수산물 유통의 괸리 및 지원에 관한 개정안)이 마련된 것이다. 획기적인 일이다. 법을 19년 전으로 돌려놨으니까 말이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수협중앙회는 지난 23일 전국 91개 조합장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임시총회에서 ‘수산자원 보호와 수산업 발전을 위한 의무상장제 전면실시 건의문’을 채택해 국회와 정부에 전달했다.

의무상장제를 수산물 전체로 확대하자는 얘기다. ‘씨도 먹힐 것 같지 않은 일’이 실제로 벌어진 것이다. 여기에 처음 불을 당긴 사람은 김성대(64) 민물장어양식수협 조합장이다. 돈키호테에 나오는 세르반테스가 아니고서는 상상도 못할 일을 그는 만들어 냈다. 정부 관계자, 수협 관계자, 연구원들도 고개를 흔들던 일이다.

핵심 내용은 이렇다. 뱀장어 등 내수면 양식어류의 경우 99% 이상이 장외에서 거래되고 있다. 때문에 법에 의한 품질 향상, 경매 또는 수의 매매 의무 등에서 벗어나 있다. 필연적으로 소수 중간 상인이 거래 정보를 독점함으로서 가격교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민물 장어의 연간 생산량은 2만톤, 생산자 금액으로 치면 6,000억원 가량 된다. 소비자에게 전달될 경우 1조원을 훨씬 넘을 수 있는 금액이다.

이런 산업을 거래 정보 부족으로 가격 교란이 심해 생산자와 소비자가 피해를 보게 해선 안 된다. 게다가 식품안전성까지 해칠 수 있다는 게 의무상장제 재도입 배경이다. 그래서 민물장어를 지정한 장소에서만 거래하게 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자는 것이 이 법의 골자다.
그러나 이 법은 지금 6개월째 표류하고 있다. 시행이 보류됐기 때문이다. 민물장어 위판장 거래 의무화를 내용으로 한 이 법은 2016년 12월 2일 공포됐다. 시행일자는 올해 6월 3일. 2월 28일 개설구역 지정기준과 3월 3일 시행규칙이 마련됐다. 민물장어양식수협은 전남 영암, 경기 일산, 전북 고창에 위판장을 마련키로 하고 전남 영암에 위판장을 개설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다. 최근에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규제 심사 과정에서 경쟁 제한적 요소가 있다는 이유로 규제개혁위 심사까지 앞두고 있다. 생산업계 및 수협은 임계점에 도달한 듯 부글부글 끓고 있다. 김성대 조합장은 “해양수산부가 왔다 갔다 하면서 일정이 엉망이 됐다”며 “시행 시기가 늦어지면서 입법 취지가 크게 훼손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해를 넘기면 엄청난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고 했다.

-왜 의무상장제를 고집하는 가.
“1998년 의무상장제가 임의상장제로 바뀌었다. 그 때는 규제를 푸는 것이 진보이고 시대적 가치였다. 그러나 19년이 지난 지금 임의상장제로 인해 여러가지 폐단이 나타나고 있다. 살충제 파동 같은 안전한 먹거리 문제도 생겼다. 또 생산현장에서 은밀히 거래되다 보니 원가 이하 판매나 유통상인의 인위적인 가격 담합으로 가격 교란이 일어나고 있다. 일본보다 양식기술이 발달하고 양질의 뱀장어를 생산하고 있는데도 검증시스템과 유통시스템 미비로 항생제 문제와 중국산 혼용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지금 시대정신은 수협의 계통출하로 국민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유통 상인의 횡포로부터 생산어가와 소비자를 보호하는 것이다. 이것이 의무상장제 도입 배경이다”

-민물장어만 보면 이 법을 19년 전으로 돌려놨다. 보통 의지 가지고는 고칠 수 없는 법을 고쳤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현재에 문제가 있다 해서 이것을 과거로 돌리는 법 개정은 쉽지 않을 것이다. 수입산의 원산지 둔갑행위와 유통 상인의 가격 교란을 막고 국민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뛰었다. 2010년 시작해서 2014년까지 국회 농해수위, 국정감사 증인으로 나가 문제의 심각성을 대내외에 알렸다. 내가 청원해서 ‘수입물품유통이력제’도 만들었다. 또 수산물 원산지 표시 임의제도 의무제로 바꾸는데 기여했다. 이런 것들이 법 개정 계기가 돼 국민의당 황주홍 의원이 2016년 7월 수산물 유통의 관리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으며 그해 11월 28일 국회를 통과됐다. 이후 정부로 이송돼 12월 2일 공포됐으며 올해 6월 3일 시행이 확정됐었다” 

-그런데 왜 시행이 안 되는가.
“나도 어이가 없다. 해양수산부는 당초엔 입법 취지대로 지난 3월 3일까지 시행규칙을 예고했다. 그러나 예고 후 법 시행 한달을 앞두고 실무자가 바뀌었다. 그러자 입법 취지와 법을 어기고 조작된 민원을 빌미로 가격 교란 당사자들 편에 서서 어려운 생산어가를 외면하고 있다. 예외 규정을 둬 시행규칙을 바꾸고, 국무조정실 등을 거치면서 시간이 6개월이나 지났다. 그러나 아직도 시행이 되지 않고 있다. 법이 마련됐는데도 시행도 해보지 않고 뜯어 고치는 쪽만 열중하고 있다. 국회 기능을 행정부가 마비시키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조작된 민원이란 무슨 말인가.
“유통 상인과 도매시장, 대형식당을 겸한 생산자 민원인들은 거의 다 원산지 둔갑과 가격 교란을 일으킨 당사자들이다. 각종 회의에 민원인 대표로 나온 한 유통 상인은 자가 판매를 빙자한 유통 상인이고 가격교란의 수혜자다. 현재도 다섯 어가로부터 수억원의 장어를 1년 전에 가져가서 아직까지 돈을 주지 않는다는 민원이 들어와 있다. 이런 사람들이 민원을 제기해 민원인 대표로 있다. 이들이 민원을 제기하고 해양수산부가 여기에 춤을 추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이것이 조작된 민원 아닌가”

-쟁점은 뭔가.
“쟁점은 두 가지다. 타 수협 허용문제와 예외 규정을 두는 것이다.
타 수협 허용 문제는 해양수산부가 우리 수협과 합의한 내용을 파기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올 2월 16일 황주홍 의원실에서 가진 회의에서 해양수산부와 우리 수협은 개설구역 지정에 대해 향후 법 시행 시 민물장어양식수협 위판장에서만 전국의 모든 뱀장어를 취급할 수 있다고 합의했다. ‘수산물 유통의 관리 및 지정에 관한 법률’ 제11조 3항에는 ‘매매장소가 제한되는 수산물을 매매 또는 거래하려는 위판장의 경우 해당 수산물을 취급하는 업종별 수협이 개설하는 구역’으로 정해져 있다. 계통 출하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다. 그러나 이것이 파기됐다. 실무자가 바뀌면서 내용도 바뀌기 시작했다.

해양수산부는 이 안을 임의로 해석해 타수협의 기존 위판장도 가능토록 했다. 어민의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지위 향상이라는 공동 목표를 구현하기 위해 우리는 이를 수용했다.
또 예외규정 문제는 자가 생산한 조합원이 자기가 운영하는 식당에 판매할 때 의무상장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했다. 도매시장 위판과 생산자와 구입자 간 직거래만 제한을 뒀을 뿐 대부분 사항은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 우리는 하루 빨리 이 제도가 시행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법은 아직도 낮잠만 자고 있다. 답답하다.
최근에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규제 심사 과정에서 경쟁 제한적 요소가 있다는 이유로 규제개혁위 심사를 거쳐야 하는 상황까지 왔다. 이것이 두달 안에 끝날지 석달 안에 끝날지 모른다. 법이 공포될 때 6개월 후 시행키로 해 놓고 1년을 넘기고 있다. 우리는 시행규칙이 모법에 어긋나 통과가 안 되면 그것은 제쳐두고 일단 시행부터 하자는 입장이다. 국회가 만든 법이 행정부에 와서 시행을 이렇게 늦춰도 되는지 모르겠다”

-예외 적용이 많은 가.
"예외 적용은 글자 그대로 특별한 경우에 한해 적용하는 것이다. 위판장 개설구역 지정도 당초 우리 수협에만 지정하도록 했는데 예외규정을 둬 지구별 수협도 할 수 있도록 했다. 법을 제정하고 예외적용을 많이 두면 본래 취지가 훼손될 수밖에 없다. 생산자가 식당을 한다고 해서 예외를 적용하면 나부터 의무상장을 하지 않으려고 식당을 개설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러나 우리는 조합원을 보호하기 위해 인터넷 판매와 자가 식당을 운영하는 생산자에게는 의무 상장을 안 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고 있다. 또 대형, 소형 구분도 안 하는 것까지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예외규정을 두는 것이 법에 어긋난다며 재입법을 하겠다는 얘기도 나오는 가.
“해양수산부가 예외규정을 두는 것이 입법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법제처에서 반대한다면 재입법을 추진하겠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다. 시행규칙 통과가 안 될 시 시끄럽게 해서 국회에서 재개정을 하려고 하는 것은 구실을 찾아 법을 유예시키려고 하는 음모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법을 시행해 보지도 않고 재입법을 추진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해양수산부가 국민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가격 혼란을 막아 생산자와 소비자를 보호하겠다는 이런 법적 취지를 훼손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과연 해양수산부가 어민과 생산자를 위한 해양수산부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시행이 늦어 손해를 보는 게 많은 가.
“유통체계 혼란, 가격 교란, 식품의 안전성 확보 등 아무 것도 변한 게 없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손해를 보는 것도 그대로다. 특히 우리 조합에서는 영암 신북면 위판장 개설을 위해 17여억원이 들어갔고 직원까지 뽑아 놓았다. 전북 고창, 경기 일산 등도 준비를 해 놓고 있다.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빨리 시행해야 한다. 생산어가 불만이 턱 밑까지 차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은 가.
“당초 입법 취지가 상당히 훼손됐다. 그런데도 우리는 조속한 시행을 강력히 촉구한다. 중국산 뱀장어가 20년간 3만톤 가량 들어 왔는데 식당에는 중국산이라는 원산지 표시가 하나도 없다. 이런 상황을 그대로 놔둬선 안 된다. 해양수산부가 10월 국정감사에서 약속한 대로 이달 말까지 시행규칙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의 시행규칙 제정이 늦어져 400여 생산자들과 건전한 수협이 어려움에 처한다면 정부가 여기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정부가 국민이 먹는 식품의 안전성을 우선으로 생각한다면 빠른 시간 내 시행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면서도 김 조합장은 “현재 우리는 백번을 양보해 정부 안을 받아들이고 있다”며 “이런데도 시행규칙을 만들지 못하고 재입법 얘기를 꺼낸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투쟁 밖에 없다”고 배수진을 쳤다.

그는 “우리 생산자가 원하는 것은 생산자가 자긍심을 가지고 생산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시중에 ‘나쁜 민물장어’가 유통돼 이것이 생산자를 욕보이게 해선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면서 “12월 6일 해수부, 수협, 민원인 130명이 모여 합의한 내용을 이행해야 한다”며 “해양수산부가 약속한 연말을 넘기면 생산업자들은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김 조합장은 70년대 영산강에 올라오는 뱀장어 치어를 잡아 일본에 수출하던 때를 거쳐 82년 선친께서 운영하던 고구마 가공공장 자리에서 장어양식을 시작했다. 지금은 1만 3,000여평 부지에 고밀도순환여과식 수조 70개와 지주식 수조를 가지고 연간 300톤 가량 장어를 생산하고 있다. 한국민물장어생자자협회 창립회장을 거쳐 제 6대 양만수협조합장에 이어 8대 조합장을 맡고 있는 그는 전남대(농대)를 졸업한 뒤 동국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를, 조선대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를 딴 학구파다. 그는 “난 식당도, 유통도 모르고 오직 장어만 기른 사람”이라고 했다. 19년을 거슬러 ‘순수 생산자’가 다시 만들어 낸 의무상장제란 작품이 앞으로 어떤 결실을 맺을지 주목된다. <문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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