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로 칼럼/ 문영주 편집국장

세상은 인종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 사람이 모여 산다. 하얀 옷을 입은 사람만 사는 세상이 아니다. 까만 옷을 입은 사람도,  노랑 옷을 입은 사람도 산다. 빨강 노랑 파랑 초록 주황 등 온갖 색들이 혼재한다. 백인만 있는 것도 아니고 흑인만 있는 것도 아니다.

‘순혈주의’란 병 걸려 있어


생각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은 꽃을 보고 화사함을, 어떤 사람은 꽃을 보고 슬픔을 느낄 수도 있다. 시급이 올라가는 것을 보고 노동자는 환호를, 사용자는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 광화문 사거리에 가보자. 그 많은 사람들 중 똑 같은 얼굴을 가진 사람을 찾을 수 있는가. 옷도 다르고 얼굴도 다르고 피부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다. 그런 사람들이 서로 다른 피부를 인정하고 서로 다른 생각을 인정하며 사는 게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는 그러한 시각 차이를 인정하고 그에 대해 적정한 수준을 만들어 가는 제도다. 민주주의는 다양성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얘기다.
자연 생태계 역시 마찬가지다. 어느 정원에 장미만 가득 심어 놓았다고 하자. 그런데 어느 날 장미를 죽일 수 있는 병이 발생하면 그 정원은 하루아침에 폐허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정원에 장미도 심고 개나리도 심고 화초도 심고 들꽃도 심는다면 그 정원은 장미를 죽일 수 있는 균들이 득시글거려도 정원이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미국이 강한 것은 다민족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여러 종족이 모여 다양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거기에 나오는 에너지가 오늘 미국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 수산계는 이런 다양성을 무시하고 ‘순혈주의’라는 고약한 병에 걸려 있다.

특정대가 아니면 행세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나 산하기관, 단체 주요 보직은 대부분 특정대 출신이 차지하고 있다. 해양수산부가 생긴 이래 수산청 출신 중 차관이 된 사람은 전 정부 때 차관이 된 손재학 차관과 강준석 현차관 두 사람(농식품부 차관  제외)이다. 이들은 모두 부산수대 출신이다. 여기에 수산정책실장과 수산정책관, 어업자원관 등 해양수산부 수산 쪽 주요 보직은 모두 부산수대 출신이다. 또 양모 부이사관 등 예비 국장 들  역시 같은 대학이다. 그러니까 해양수산부 수산 쪽 계선은 차관을 정점으로 실장, 국장 등이 모두 동문인 셈이다. 정원에 장미 한 종류만 가득한 모양새다.
산하기관, 산하단체 역시 더 하면 더 했지 다를 바 없다. 지금 심사 중인 국립수산과학원장 역시 특정대 출신이 될 가능성이 많다. 수산계 가장 큰 단체인 수협의 총수도 특정대다. 한국수산회, 한국원양산업협회, 한국어촌어항협회, 한국수산무역협회 등 수산계 내노라 하는 단체장 모두 마찬가지다. 이런 현상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단체나 기관의 임원 및 중견간부 역시 특정대 출신이 대부분이다. 수협중앙회장을 비롯 경제대표, 이사, 노량진수산시장 사장, 집행간부 등 주요 보직을 그들이 차지하고 있다. 한국원양산업협회, 한국어촌어항협회, 한국수산무역협회 역시 주요 자리엔 어김없이 그들이 앉아 있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 수산계를 쥐락펴락한 사람들 대부분이 이 대학 출신이다. 물론 이 대학출신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다만 수산 생태계를 이렇게 만들면 안 된다는 얘기다. 생태계에 다양성이 상실되면 생물들이 유기적인 관계를 만들 수 없는 것처럼 자칫 그들은 고립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빠질 수 있다. 외부에 네트워크가 견고해야 안에서 문제가 생겨도 버틸 수 있는데 밖에 우군이 별로 없다. 그들이 쳐 논 울타리를 조금만 벗어나도 그들은 외로움에 빠질 수 있고 경쟁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이런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과감히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닫힌 문은 더욱 견고하다.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내가 이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슬픈 얘기’를 더는 해서는 안 된다. 내가 진정으로 수산을 위한다면 나를 버리고 나보다 나은 다른 사람을 인정해야 한다. 능력 있는 사람이 어촌에 가서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 보고 싶은데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진입 장벽을 만들어 못 들어오게 한다면 그 어촌의 미래는 뻔하다.

나보다 나은 사람 인정해야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일 청와대에서 전날 발표한 군 대장급 인사들에 대한 진급 및 보직 신고식에서 “우리 군의 중심이 육군이고 육사가 육군의 근간이라는 것은 국민께서 다 아는 사실”이라면서도 “이기는 군대를 만들기 위해 우리 군의 다양한 구성과 전력은 꼭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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