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촌현장 윤진숙장관 때부터 가는 곳만 가고
항만공사 방문·해양수산계 인사들과 밥 먹고

신임 해양수산부장관이 해양수산계 기대 속에 취임하지만 외형상으로는 별로 달라지는 게 없다. 10년 전이나 비슷한 ‘그 밥에 그 나물’이다.

먼저 장관이 취임하면 각 실 · 국 업무보고가 정식으로 시작된다. 장관 인사청문회에 대비해 만든 정책검증팀 보고와는 차이가 많다. 시간은 빠르면 일주일 정도. 그 사이 급한 데가 있으면 현장을 방문한다. 그런 다음 각 지역 현안을 알아보기 위해 지방항만공사를 거점으로 현황 파악이 시작된다. 김영춘 장관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오래 동안 내려온 관가의 관행이다.

그러나 이제 이런 방법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과연 이런 방법이 현황 파악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는 얘기다. 김영춘 장관 취임 후 일정을 한번 돌아보자. 그는 취임 후 곧바로 기자실에 들러 소감과 앞으로 생각들을 얘기한다. 이런 것 까지는 행정수요자를 위한 서비스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이후 각 실 · 국 업무보고, 현황 파악을 위한 현장 출장이 시작된다. 여수광양항만공사, 인천항만공사, 부산항만공사, 울산항만공사가 거점이 된 지방출장에서는 각 기관 업무보고에 이어 지역 해양수산계 인사들을 만나 현안 사항을 듣고 식사를 한다. 때론 그 사이 수산을 알아보기 위해 수산 쪽 현장을 가보기도 한다. 대부분 이런 식이다. 새 장관이 왔으니까 상견례 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장관을 한번 만나면 다시 만나는 게 쉽지 않다. 그런데 장관 행보는 주마간산(走馬看山)이다. 이런 식이라면 안 가는 것보다 낫겠지만 시간과 효율로 따지면 문제가 많다. 솔직히 장관도  얼마나 머리  속에 남는 게 있는지 궁금하다.

게다가 장관 현황파악이 마치 성지순례 하듯 한다. 신임 장관이 오면 어디가고 어떻게 하고 매뉴얼대로 움직인다. 심지어 10년 전 윤진숙 장관 때 가장 잘 된 어촌계라며 보여준 화성 백미리 어촌계를 지금도 똑같이 보여준다. 화성 백미리 어촌계는 매번 장관이 새로 오면 가는 순례지가 된지 오래다. 해양수산부는 장관만 오면 10년 동안 왜 그 어촌계만 보여 주는지 궁금하다. 바쁜 장관이라서 접근하기가 쉬워 거기를 택한 걸까.

그러나 그것은 말이 안 되는 얘기다. 장관이 어촌현장을 찾는 것을 바쁘다고 한다면 그는 해양수산부장관이 아니다. 어촌현장이 바쁘다는 핑계로 안 가도 되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충분조건이 아니라 필요조건이다. 그 동안 수산 쪽에서 제대로 일을 못해 거기만 보여주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가는 것 또한 사실이다. 10년 동안 백미리 어촌계 같은 어촌계 하나 육성하지 못했다는 반증 아니냐고 하면 뭐라고 답할지 모르겠다.

이런 매뉴얼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 사용한다는 것은 해양수산부도 문제고 장관도 문제다. 해양수산부는 먼저 장관이  업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런데 고민한 흔적이 없다. 마치 흘러간 레코드판 틀듯이 한다. 장관 역시 마찬가지다. 장관이 처음이라서 잘 모를 수 있지만 이런 식의 보고라면 문제가 있다고 느껴야 한다. 현황 파악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워밍업이다. 현황파악이 안 되는 데 제대로 된 처방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지금 현황 파악은 변죽만 울릴 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국민의 정부서 최장수 차관을 지낸 홍승용 중부대총장은 “이런 방법으로는 현황 파악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넥타이 풀고 장관과 얘기하고 싶은 사람 있으면  모두 다 나와 얘기해 보자는 그런 대규모 토론회를 여는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장관과 토론하는 것만으로도 민원의 20~30%는 해결할 수 있다”고도 했다.

바다모래 채취, 중국어선 불법조업 및 북한수역 조업문제, 연근해 자원관리, 최근 현안이 되고 있는 민물장어 위판장 설치 문제  등 크고 작은 현안을 놓고 허리 띠 풀러놓고 한 번 해보자고 해야 한다는 얘기다. 많은 사람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지적한다. 우선 장관이 지방출장 때처럼 대충 얘기 듣고 밥 한 끼 먹는 게 아니라 행정수요자와 소통다운 소통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관료의 시각이 아닌 행정수요자나 전문가의 시각에서 현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이점도 있다. 한 중견 수산인은 “상의하달(上意下達)과 하의상달(下意上達)이란 쌍방향 채널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면 장관으로선 상당한 수확이 아니냐”고도 했다. 

한 연구기관 관계자는 “신임장관이 각 실· 국 업무보고를 받을 때 대학교수나 연구기관 관계자, 전문가들을 배석시켜 일방적 보고가 아닌 토론식 보고가 되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업무를 잘 모르는 신임 장관이 보고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그런 보고행태를 바꾸자는 얘기다. 그렇게 될 경우 장관의 현황 파악은 시간절약뿐 아니라 업무의 깊이까지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장관이  받은 보고 중 일부는 문제가 있는 부분들도 적지 않다. 명태 양식, 뱀장어 양식 등에 대한 논란을 그가 제대로 알았다면 남북관계 개선 시 북한과 같이 명태치어를 방류하겠다는 얘기는 쉽게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김영춘 장관은 지난달 19일 취임식에서 직원들에게 “‘관행(慣行)’, ‘관망(觀望), ‘관권(官權)’ 등 3관의 자세를 버리고 새로운 자세로 일하자고 했다”고 했다. 그가 앞으로 이런 관행을 어떻게 개선해 나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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