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동 칼럼/ 문영주 편집국장

루비콘 강은 이탈리아 북동부에서 아드리아해(海)에 흘러들어가는 작은 강으로 로마 공화정(共和政) 말기, 이탈리아와 속주(屬州)인 갈리아주(州)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강이다. 

BC 49년 로마에선 삼두정치의 한명인 크랏수스가 죽자 시저파와 폼페이우스파 간의 대립이 생기고 폭동이 난무한다. 폼페이우스의 사주를 받은 원로원이 갈리아에 있던 시저(카이사르)에게 군대를 해산하고 로마로 돌아오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러자 시저는 폼페이우스와 정면 대결키로 하고 네 개의 군단을 이끌고 루비콘 강을 건넌다. 로마법에 따르면 총독의 자리를 내놓은 자는 군대를 거느리고 이 강을 건널 수 없다. 하지만 시저는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를 장악한다. 시저가 루비콘 강을 건넜다는 고사다.

바다모래 채취와 수협은행장 선출을 놓고 지금 해양수산부와 수협중앙회는 한 쪽은 로마에, 한 쪽은 갈리아에 서 있는 사람 같다. 보이지 않는 갈등이 팽팽하다. 그야말로 일촉즉발(一觸卽發)이다.

바다모래 채취 문제가 이렇게 커진 것은 해양수산부의 정무적 기능 때문이다. 바다모래 채취는 국가적으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해양수산부장관이 “국가적 측면에서는 그런 측면이 있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해양수산부장관이라면 어느 상황에서도 바다모래 채취를 반대해야 한다. “모래를 그렇게 퍼내면 해양생태계가 망가져 안 된다. 다른 방법을 찾아라” 그렇게 해야 한다. 그래야 해양수산부장관이다. 해양수산부장관이 바다모래 채취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한 순간 그는 더 이상 해양수산부장관이 아니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훨씬 더 밉다. 오죽하면 국회에서도 김 장관이 어느 부 장관이냐고 물었겠는가.  

수협은행장 선출도 부정적으로 보면 정부가 잘못하는 거다. 우리나라가 해외에서 원조를 받았다고 대통령을 자기들이 뽑겠다고 하면 우리 국민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가. 물론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능력 있는 사람이 온다면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단순히 돈을 지원했으니까 행장은 우리가 뽑겠다고 하는 것은 전형적인 ‘갑’의 논리다. “한진해운 파산 때는 제 목소리를 못 내던 해양수산부가 은행장 뽑는 데는 왜 그리 용감하느냐”는 얘기도 허투루 들어선 안 된다.
 

물론 정부 논리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2조원 가까이 돈을 지원하고 수협은행이 시중은행과 경쟁하기 위해 ‘은행 틀’을 잡을 수 있는 은행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얘기는 정부가 할 수 있다. 그러나 능력에 대한 평가를 정부 주관대로 하는 것은 맞지 않다. 정부가 보면 정부가 추천한 사람이나 정부 입맛에 맞는 사람이 나을 수 있다. 그러나 수협이 보면 수협이 추천한 사람이 좋을 수 도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입맛에 맞는 사람만 행장이 돼야 한다는 것은 합리적인 평가나 선택이 아니다. 그렇다면 수협에 권한을 주고 철저하게 책임을 묻는 그런 방식이 차라리 유효하다. 기회도 주지 않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 가치인 평등과 위배된다.

이런 문제 때문에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어야 할 해양수산부와 수협이 루비콘 강을 건넌다면 이는 국가적 낭비이고 비극이다. 수협은 해양수산부의 존재 이유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또 수협은 해양수산부 때문에 ‘시린 이’를 보호받을 수 있는 관계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셈이다. 그런데도 이런 문제 때문에 서로 반목하고 루비콘 강을 건넌다면 해양수산부나 수협의 미래는 더 들여다 볼 필요가 없다.

루비콘강을 건넌 시저는 BC 44년 3월 15일, 로마 원로원 회의장에서 자기 친구인 브루투스 등 로마 원로원의 공화정 옹호파에 의해 칼에 찔려 죽었다. 시저와 싸웠던 폼페이우스도 시저에 패한 뒤 이집트로 도망가 거기서 암살됐다.

역사는 가정이 없다지만 이들이 싸우지 않고, 또 시저가 루비콘 강을 건너지 않았다면 로마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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