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자금, 왜 조합장 쓴 것만 회수 하나
조합장=부자 등식, 아주 잘못된 인식
법 형평성이 가장 중요…왜 한쪽 손에 저울 있는지

조합장 영어자금 회수를 놓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감사원은 지난해 말 영어자금을 많은 영세 어업인들이 써야 하는 데 조합장들이 너무 많이 쓰고 있다며 조합장들이 쓴 영어자금을 회수하라고 했다. 아무래도 여유가 있어 보이는 게 조합장이다. 또 일반조합원보다 여유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타깃이 조합장에게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18일 현재 51명 조합장이 쓴 영어자금은 112억원(수협 집계)이다. 한 사람이 평균 2억2,000만원 정도 쓴 것이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돈이다. 수협중앙회에 따르면 이 가운데에는 몇억원 쓴 사람도 있지만 몇백만원 쓴 사람도 있다. 조합장 사이에서도 빈부 간 격차가 큰 모양이다. 현재 최고 많이 쓴 사람은 9억원. 양식어업 조합장들은 시설비가 많이 들어가서 그런지 사용 금액이 많다. 그렇다고 이들이 법을 어기면서 돈을 쓰는 것은 아니다. 규정대로 사용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법적 일탈도 없는 사람들에게 갑자기 자금을 모두 회수하라는 것은 법치주의 국가의 온당한 행정행위가 아니다. 우리는 조합장 편을 들고자 하는 건 결코 아니다. 다만 법은 가장 중요한 게 형평성이다. 대법원에 가면 앉아 있는 정의의 여신상이 왜 한 쪽 손에 저울을 들고 있는지 이유를 알아야 한다. 법이 한 쪽에 기울면 안 된다는 얘기다. 조합장이라고 해서 특권을 허용해선 안 된다. 또 조합장이라고 해서 불이익을 줘서도 안 된다. 평조합원이면 규정대로 영어자금을 써도 되고 조합장은 규정대로 영어자금을 쓰면 안 된다 이것은 헌법 소원을 해야 할 일이다. 조합장이란 특권을 가졌으니까 그 정도 불이익은 받아도 좋다는 얘긴가. 이것은 반대로 얘기하면 돈 없는 사람은 조합장 하지 말라는 얘기다. 기회의 박탈이다. 내가 사업을 하면서 돈이 필요해 정부 자금을 쓰고 있다고 나 보고 국회의원에 나오지 마라는 것과 같다. 국회의원에 나올 때 정부 지원금을 모두 갚아야 한다는 얘긴 아직껏 들어본 적이 없다.

헌법에서 국회의원은 만25세 이상 국민으로서 선거권이 있는 자, 다시 말해 금치산자, 형의 선고를 받고 집행 중에 있거나 집행을 받지 않기로 확정되지 아니한 자 등 선거권이 없는 자등을 제외하고는 피선거권을 갖도록 하고 있다.  제헌 국회 때 친일부역세력에 대한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제한한 것 이외에는 여태까지 피선거권을 제한해 본적이 없다. 그런데 조합장들이 어업을 하기 위해 정부 자금을 썼다고 조합원과 동등한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예고도 없이 돈을 갚으라고 하는 것은 조합장들의 피선거권을 제한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갚을 능력이 없으면 조합장 직을 내 놔야 한다. 그게 지금 정부 얘기다.

물론 이것을 받아 들여야 할 조합장 의무도 있을 수 있다. 또 조합장은 특권이 있기 때문에 조합원들을 위해 오히려 엄격한 제한을 둘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법은 모든 사람에게 똑 같이 적용돼야 한다. 조합장 법이 따로 있고 조합원법이 따로 없다. 이 같은 자의적 판단이 작용하면 행정에 대한 수요자 저항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정말 필요하다고 해도 예고기간을 둬야 한다. 행정예고가 왜 필요한지, 행정을 하는 정부가 그것을 도외시 한다면 국민을 무시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해양수산부도 이런저런 사정을 고려해 한꺼번에 이를 상환하라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매년 조금씩 분할 상환하라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으며 어업인들이 폭탄을 맞는 기분이 들지 않도록 연착륙을 유도하겠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에 대해 조합장들은 1년간 유예 기간을 달라는 모양이다. 이 정도 상황이면 충분히 중간지점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정부의 발상이다. 아무 때고 행정편의주의를 앞세워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면서 국민들에게 불편을 주는 이런 행위는 더 이상 해선 안 된다. 어업인들이 순해서 그렇지 농민들에게 이런 행위를 한다면 농민들이 가만히 있을까.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 시위에 참가하기 위해 트랙터를 몰고 서울로 오는 농민들에게도 과연 이런 행정행위를 할 수 있을까. 언젠가 어민들이 배를 끌고 세종청사로 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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