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선 15척으로 국내어선 2만6000척, 중국어선 1600척 지도·단속
모든 단원 3교대로 당직근무 서며 승선조사도 병행
지원과 인원부족에 시달리지만 우리 바다자원 관리 소홀히 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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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는 과수원과 닮았다. 과실이 자라기까지 기다렸다가 먹기 좋게 익으면 수확하는 과수원처럼 바다도 일정수준까지 자란 물고기를 어획해야 한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중국어선들이 우리나라 서해로 넘어와 무분별한 조업활동을 펼치고 있다. 과실로도 모자라 나무를 뿌리 채 뽑아가려 하고 있다. 이런 중국어선에 맞서 서해의 ‘뿌리’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서해어업관리단이다.  

 지난 2일 전남 목포해양대학교 뒤편에 위치한 국가어업지도선 전용부두에 기자가 도착했을 때 날씨는 완연한 겨울로 접어들었음에도 초겨울처럼 따뜻했다. 바람도 약하게 불어서 바다 또한 고요했다. 전용부두에는 기자가 탑승할 ‘무궁화15호’가 정박해 있었다.

 서해어업관리단은 서해 NLL해역 이남수역부터 제주도 이서수역까지의 어업을 관할한다. 면적만 해도 19만 5000㎢으로 우리나라 면적 99만 5000㎢의 약 2배에 달한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국내어선은 2만6000여척이고 허가를 받고 조업하는 중국어선 1600척에 이른다. 불법으로 조업하는 무허가 중국어선을 포함하면 그 숫자는 더욱 늘어난다. 이 넓은 면적과 수많은 어선을 지도·단속하는 서해어업관리단의 지도선은 고작 15척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반으로 나눠서 7박8일씩 2교대로 운행되다보니 10척에도 못 미치는 지도선이 서해에서 이뤄지는 어업활동을 관리하는 실정이다.

 서해어업관리단 김동욱 단장을 비롯한 전 단원들은 무궁화15호 앞에 마련된 고사장에서 신년하례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올 한해에도 안전하게 지도·단속을 할 수 있도록 고사를 지낸 후 단원들은 ‘안전운항’을 삼창하는 것으로 신년하례식을 조촐하게 마쳤다.

 신년하례식을 마친 후 김희주 선장을 포함한 무궁화15호 소속 16명의 단원들은 오후 3시로 예정된 출항을 위해서 배로 이동했다. 무궁화15호는 1500톤급 지도선으로 길이 70m 폭 12.3m로 서해어업관리단이 보유한 3척의 1000톤급 어선 중의 하나이다.

갑판을 기준으로 지하에는 기관실이, 1층에는 식당·세면장·체육시설 등의 편의시설이 2층에는 선실, 3층에는 선장실이 위치해 있고 항해를 담당하는 조타실은 4층에 있다.

오후 2시 선장실에서 출항을 준비하는 김 선장을 만났다. 김 선장은 기자에게 승선시 유의사항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하고 멀미를 하는지를 물었다. 멀미가 심한 경우 안전을 위해 큰 배를 육지로 돌려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해어업관리단의 배정된 유류비는 연간 80억 정도이다. 이 예산으로는 24시간 내내 바다를 누비며 지도·단속을 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했다. 하루에 평균 8시간 내외로 운항하며 그 외에는 엔진을 끄고 파도에 흐름에 따라 이동하는 ‘표박’을 한다. 김 선장은 “중국어선이 모여 있는 근처에 표박을 하기 때문에 운항을 하지 않아도 단속효과가 있다”고 말하면서도 효과적인 지도를 위해서는 유류비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서해어업관리단은 159척의 중국어선을 나포해 담보금 74억원을 부과했고 이 과정에서 21명이 구속됐다. 이 중에 무궁화15호가 나포한 어선은 28척이다. 김 선장은 서해어업관리단의 임무는 중국어선 나포가 아니라고 말했다. 김 선장은 “1척의 어선을 나포해 항포구로 이동하는 사이 공백을 틈타 100척의 어선이 불법조업으로 자원을 싹쓸이해가면 지도·단속의 의미가 없다”며 서해어업관리단의 임무는 우리나라 해역의 수산자원이 고갈되지 않도록 어선들을 지도·관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후 3시에 다다르자 김 선장은 조타실로 이동했다. 조타실에는 서진환 항해장, 김상준 기관장, 김효성 통신장이 장비들을 최종 점검하며 출항을 준비하고 있었다. 조타실 내 시계를 바라본 후 김 선장은 출항준비를 지시했다.

얼마 후 ‘웅웅’거리는 소리가 배 안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엔진과 발전기가 작동된 것이다. 엔진이 예열을 마치자 김 선장은 선내방송을 통해 출항을 알렸다. 대기하고 있던 단원들은 갑판으로 나가 닻을 끌어올렸고 무궁화15호는 뱃머리를 돌려 항구를 빠져나갔다. 조타실 너머로 드넓은 바다가 펼쳐졌다.

무궁화15호는 10~11노트의 속력을 유지하며 장자도와 달리도를 지나 목포해역을 통과해 이번 임무 수행지인 흑산도 서방 지역으로 7박8일간의 항해를 시작했다. 항해가 시작되면 식사를 담당하는 위생사를 제외한 모든 단원들은 배를 운항하기 위해서 3교대로 당직근무를 선다. 단원들은 하루에 4시간씩 두 번 총 8시간은 배를 운항하는데 할애해야 한다. 

 흑산도 인근에 다다르자 날이 저물었다. 섬도 보이지 않는 주변에는 온통 바다뿐이었다. 바다색도 검정색처럼 보였다. 배의 조명이 없었더라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천지가 됐을 것이다. 김 선장은 배의 엔진을 끄고 표박을 하라고 지시했다. 최근에 단원들의 안전을 위해 밤에는 가급적이면 승선조사를 하지 말라는 지시가 있어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배의 운항도 하지 않는다고 김 선장은 말했다.   

 다음날 날이 밝자 무궁화15호는 다시 흑산서방을 향해 운항을 시작했다. 오전 9시 30분이 지나 흑산서방 지역 우리측 배타적경제수역에 다다르자 레이더에 중국어선이 포착됐다. 망원경을 통해 쌍타망 중국어선임을 확인한 김 선장은 선내방송을 통해 승선조사 준비를 알렸다. 단원들은 단속복을 입고 구명조끼와 헬멧을 착용한 후 단속정에 승선했다. 당직 근무자와 위생사를 제외한 전원이 승선조사에 참여했다.

무궁화15에는 승선조사팀이 따로 없었다. 무궁화15호 뿐만 아니라 서해어업관리단은 승선조사팀을 별도로 두지 않는다. 당직 근무를 제외한 모든 인원이 승선조사에 참여한다. 근무를 마친 후 취침 중이라도 승선조사가 시작되면 바로 일어나 합류한다. 단원들은 출항 후 이튿날 까지는 괜찮지만 3일째를 넘어서면 피로가 쌓여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기자도 단원들과 똑같이 장비를 착용하고 단속정에 올라탔다. 단속정에 시동이 걸렸고 조업 중인 중국어선을 향해 나아갔다. 단속정은 파도를 거스르며 나아가다 높은 파도를 만나면 튀어 올랐다. 단속정이 튀어 오를 때마다 충격이 고스란히 몸에 전달됐다. 조사 대상은 중국 쌍타망 어선이었다. 그물을 해저에 닿도록 해 동시에 끌면서 조업하는 쌍타망어선은 본선과 종선으로 구성돼 있어 양쪽 모두 승선해 조사를 해야 한다.


단속정은 본선에 다가가 배 옆에 단속정을 붙였다. 본선 조사를 위해 3명의 단원이 내렸고 나머지 단원들은 종선 조사를 위해 이동했다. 기자는 나머지 단원들과 함께 종선에 오르기로 했다. 단속정이 종선 옆으로 다가갔고 단원들은 출렁이는 파도에 단속정이 높이 오르는 순간 중국어선으로 건너갔다.

기자도 단원들을 했던 대로 중국어선으로 옮겨 타려다 미끄러져 먼저 옮겨 탄 단원이 잡아주지 않았다면 바다로 떨어질 뻔했다. 미끄러진 기자를 잡아준 단원은 기자에게 보기에는 쉬워도 타이밍을 놓치면 깊은 바다로 떨어지기 십상이니까 주의하라고 했다. 두 명의 단원은 배에 올라타자마자 자연스럽게 2층 선장실로 올라갔다. 나머지 2명의 단원은 뱃머리의 어창으로 이동했다.


단속 대상인 중국어선은 유허가 어선이었다. 무허가 어선은 바로 나포해 이동하면 되지만 유허가 어선은 조업일지에 기재된 어획량과 중국 어정국에 신고한 어획량, 어창의 보관된 어획량이 일치하는 지를 확인하고 그물코는 규정에 맞는지 어업허가증은 위조된 것이 아닌 지 등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하나라도 위반사항이 적발된다면 제한조건위반으로 나포돼 담보금을 부과 받는다.    


기자는 먼저 어창으로 이동했다. 중국어선은 악취로 진동했다. 갑판에는 중국선원들에게 밟히고 짓이겨져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고기들로 가득했다. 코를 찌르는 악취 때문에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단원들은 중국선원들에게 어창을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 중국선원들이 어창 문을 열자 플라스틱 상자에 담긴 어획물들이 보였다. 단원들은 플라스틱 상자 하나의 무게를 잰 후 총 플라스틱 상자에 개수를 곱해서 전체 어획물을 측정했다.

어창을 조사한 단원은 측정한 어획물의 무게를 2층 선장실에서 조업일지를 조사한 선원에게 알렸다. 2층 선장실을 조사하던 단원은 조업허가증을 면밀히 살펴본 후 조업일지에 기재된 어획물을 계산하고 있었다. 이 중국어선이 중국에 보고한 어획량은 총 5톤이었고 조업일지에 기재된 양과 창고에 보관된 양과도 일치했다. 위반사항이 적발되지 않았다. 이후 총 6차례 더 승선조사를 실시했지만 제한조건을 위반한 중국어선은 없었다.

오전 11시 30분에 무궁화15호에 복귀하자마자 조사에 참여했던 일부 단원은 장비를 벗고 바로 당직근무를 위해 조타실과 기관실로 이동했다. 힘들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 단원이 웃으며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기자에게 반문했다. 이 단원은 마음껏 바다를 누비며 항해를 할 수도 없고 인원도 부족하지만 그렇다고 조사를 소홀히 한다면 중국어선들에 의해 우리나라 수산자원은 금세 씨가 마를 것이라고 말하고는 당직근무를 위해 조타실로 향했다.    

나머지 단원들은 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이동했다. 함께 밥을 먹으며 옆에 앉은 단원에게 배를 타면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이 단원은 잠시 고민한 후에 많은 고충이 있지만 그 중에 가장 힘든 건 일 년의 절반을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번 배에 타면 7박8일 동안은 내릴 여건이 안 돼 집에 무슨 일이 생겨도 가지 못하고 속앓이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래도 목소리는 틈틈이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이 단원은 기자를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점심식사를 마친 후 단원들은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 오후 지도·단속을 위한 재정비에 들어갔다. 조타실에 들어서자 김 선장은 레이더에 표시된 지도를 가리키며 우리측 배타적경제수역과 잠정조치수역에 경계선까지 이동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김 선장은 조타실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김 선장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끝없이 펼쳐진 바다밖에 보이지 않았다. 김 선장은 그 너머 어딘가에 무궁화15호가 나아가야 할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배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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