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후 수산물품질관리원에 조용한 변화 바람 일으켜
전 직원 참여 공정하고 예측 가능한 인사 시스템 도입
원장 지방 출장 일정 안 짜고 언제 출장 방문지만 통보

 
  엄기두 원장 취임 후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이하 품질관리원)이 몰라보게 변하고 있다. 마치 오래 동안 긴 잠에 빠졌던 사람이 잠에서 깨어난 분위기다. 상하 간에 신뢰가 싹 트고 직원들 얼굴에 생기가 돈다는 게 직원들 얘기다.
 

  이 같은 변화는 엄 원장 취임 후 행보 때문이다. 사연은 이렇다.
 

  엄 원장은 지난 8월 부임 후 놀랐다. 품질관리원이 농림수산검역검사본부에서 분리해 나올 때 당장 필요한 경비를 받아 오지 못했다. 이 때문에 출장비 마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는 이곳에 오기 전 보직이었던 본부의 기획재정담당관 경력을 백분 이용해 다른 곳에서 돈을 가져와 급한 불을 껐다.
 

  그리고 일본 방사능 문제가 터졌다. 그는 이것이 인원과 예산을 늘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행안부, 기재부 등과 협의를 해 10명의 정규직과 90여명의 보조인력(알바)을 원산지 표시 업무 등을 할 수 있도록 일단 잠정 합의를 이끌어 냈다. 위기를 전환의 기회로 만든 것이다.
 

  그는 이 일이 끝나자마자 지원을 순시했다. 지원을 순시한다 하니까 5급 사무관이 많은 시간을 소비해 원장 출장 일정을 만드는 것을 보고 일정 짜는 것을 중단토록 했다. “가서 업무보고 받고 한 군데 현장에 들러보는 게 고작인데 많은 시간을 거기다 할애 하는 것은 잘못된 관행”이라는 게 엄 원장 생각이다.
 

  그의 생각은 여기에 머물지 않았다. 왜 품질관리원이 침체돼 있고 직원들 얼굴에 생기가 없는지 그 이유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가 찾아 낸 원인 중 가장 큰 것이 인사 문제. 그는 본부에 강력히 요청해 우선 6급 2명을 사무관으로 승진시켰다. 수산직 사무관 승진자 4명 가운데 2명을 품질관리원이 가져 온 것이다. “본부와의 관계를 생각할 때 품질관리원이 생긴 이래 최대 승진 인사일 것”이라는 게 직원들의 평가다.
 

  그는 또 직원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공정하고 예측 가능한 인사 ‘틀’을 만들었다. 이른바 ‘5급과 6급 이하 전보 원칙’이다. 그는 5급(4.5급 포함)의 경우 대부분 지원장 근무를 희망하는 것을 보고 △전입자는 우선 본원에 배치하고 △본원 1년 이상 근무자 중 지원장 근무 희망자는 지원장으로 우선 배치한다는 것 등을 내용으로 한 8가지 전보 원칙을 만들었다. 또 동일 지원에서 2년 이상 복무한 지원장은 본원 또는 타지원으로 반드시 이동하고 동일지원에서 지원장 근무는 불가피한 사유가 없는 한 최소 1년을 보장해 앞으로 자기가 어디로 갈 것인가를 미리 예측할 수 있게 했다.
 

  6급 이하에 대해서는 △동일부서 2년 이상 복무한 직원은 타부서나 지원으로 전보 인사를 원칙으로 하고 △완도, 제주, 강릉 지원 등 3개 지원을 비선호 지원으로 정하고 3개 일반지원 근무 시에는 비선호 지원으로 전보를 의무화했다. 이 밖에도 본원과 지원 간 순환근무 원칙과 국외 단기 훈련 대상자 선발 기준을 만들었다. 역시 공정하고 예측 가능한 인사를 하기 위한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 같은 원칙을 직원 모두가 참여해 만들었다는 것이다. 누가 지시한 것도 아니고 지난 9월6~7일 자기들 스스로 안을 만들고 워크숍을 통해 안을 확정한 것이다. 엄 원장은 “이 원칙을 만드는 과정에서 원장과 과장은 하나도 개입을 안 했다”며 “직원들이 난상 토론을 해 만든 원칙이기 때문에 내 후임에 누가 온다 해도 이 원칙을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과거 해양수산부 수산정책과에 있을 때 어려운 수협 개혁 문제를 소리 없이 처리했던 그의 능력이 다시 생각나는 대목이다.
 

  또 엄 원장은 직원들에게 전자 결재를 철저히 이행토록 하고 있다. “전자결재를 하라고 했는데 다시 서류로 가져 오면 이중으로 보고하는 것 아닙니까? 전자 결재 내용을 못 보면 그것은 직원의 책임이 아니고 기관장 책임입니다”
 

  그는 이와 함께 품질관리원 사상 처음으로 장기 비전을 준비하고 있다. 2020년, 2030년 품질관리원이 어떤 기능을 해야 하는지 장기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품질관리원을 우선 국민의 신뢰를 받는 기관으로 만들고 기관의 자체 능력을 향상시켜 이를 바탕으로 개도국에 기술을 전수할 수 있는 국제적인 기관으로 발돋움 하겠다는 게 그의 복안이다.

 
  “제가 지원장을 하면 얼마나 하겠습니까?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품질관리원이 국민의 신뢰를 받고 세계적인 기관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  해양수산부에서 가장 기획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가 이달 중 마련할 장기 비전이 벌써부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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