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소형기저 막고 자원관리에 전념…소득증대 등 어촌 변화
‘남해 생생멸치’ 브랜드 특허 등록  공동체 소득증대에 앞장

경남 남해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과 청정해역, 다양한 관광명소를 자랑하는 곳이다. 경남 맨 아래쪽에 있는 남해는 글자 그대로 아름다운 남쪽 쪽빛 바다에  다소곳이 걸쳐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37년간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사는 뱃사람 김창영(61세)씨, 이 지역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은 속된 말로 ‘간첩’이다. 78년 남해군정 자문위원을 시작으로 81~84년 송북어촌계장, 85~88년까지 수산업경영인남해군연합회장, 2005년부터 현재까지 남해정치망자율관리위원장을 맡으면서 2008년부터 한국자율관리어업연합회 남해군 지부장을 겸직하고 있는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김 위원장은 2005년 남해정치망자율관리공동체를 결성해 위원장직을 수행하면서 그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그는 위원장이 된 후 탁월한 리더십으로 어린고기 안 잡기, 불법어업 근절 등 어업인의 의식개혁을 통해  스스로 자원을 관리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고, 지속가능한 어업 실현을 위해 노력했다.
그가 강력히 드라이브를 건 것은 불법어업 추방과 어업인 의식개혁, 그리고 어촌계원 화합과 소득증대. 이 마을도 자율관리공동체가 결성되기 전에는 어족자원은 무주물로서 선점하는 자가 주인이라는 인식을 갖고 경쟁적 조업으로 자원을 남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율관리공동체를 결성한 후  월 1회 전회원이 참여하는 회의를 정례화 하고 회원 상호간 소통을 통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어족자원 남획방지와 회원간 결속력 강화를 위해서다.  그 중심에 김 위원장이 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물메기 자원 조성을 위해 공동체 자체 자금으로 물메기 통발 어업인 들로부터 수정란을 매입해 방류했다. 또 공동체 회원 전체가 관련법령에서 규제하는 것 외에도 정치망에서 포획되는 어린고기는 모두 방류토록 했다. 공동체 회원은 물론이고 지역 어업인들에게 어린고기는 잡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계도했다. 또한 공동체 전체 회원들에게 정치망이 연안에서 산란해 생산되는 어린고기를 포획함으로써 자원고갈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인식시키고 그물코 조정의 필요성을 강조,  과감하게 그물코를 크게 해 어린고기가 포획되지 않도록 했다. 자원관리를 위해 어업할 때 일어나는 일상의 모든 것을 바꿔 갔다.


 또 2005년 자원고갈의 주범이었던 소형기선저인망(일명 고데고리) 정리에 관한 특별법 시행 시 종사하는 어업인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해 소형기선 저인망 어업 근절에 앞장섰다. 그러나 법 시행 후 보상을 받고 소형기선 저인망이 근절됐다고 생각했으나 어선어업이 부진하자 일부 어업인들이 다시 소형기선 저인망 조업을 재개하려고 했다. 이 때 그의 진가가 발휘됐다. 그는 자원회복을 위해 소형기선 저인망 어업은 절대 안 된다는 것을 알리고 정부에서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정리한 소형   기선저인망어선의 재진입을 온 몸으로 막았다. 소형기선저인망은 수산자원의 씨를 말리는 어업으로 더 이상 어촌에 발을 붙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때론 신변의 위험까지 겪어야 했다. 그는 이때를 “용기가 필요했던 때”라고 당시를 회고 했다. 또 특정어구(삼중자망 등) 사용 안하기, 무허가 조업 금지 등 관련법을 준수토록 했다. 수산자원을 고갈시키는 어촌을 몰락하게 하는 것이고 어업인들을 사지로 몰아넣는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면서 매월 1회 청소의 날을 정해 공동체 회원 전체가 참여하는  해안 변 쓰레기 청소를 실시했다. 특히 우기 시에 해안 변에 밀려오는 스치로폼 등 쓰레기가 많이 밀려오는 지역에 대해서는 수시로 청소를 실시, 깨끗한 어장환경 조성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불법어업을 막아 철저히 자원관리를 하고 어장 환경을 개선한 결과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1981년 송북어촌계장으로 재직하면서 임대형식으로 운영되고 있던 1종 공동어장인 현 마을어장을 어촌계에서 직접 운영함으로써 매년 6천만원 이상의 소득을 올리고 어업인 소득증대를 위해 어촌계 지선에 2ha의 우렁쉥이 수하양식장을 개발해 매년 1억원 이상의 공동수익을 올리기도 했던 김 위원장은  2011년 진주국제대학과 산학협력으로 개발한 멸치상자를 ‘남해 생생멸치’라는 브랜드로 진주상공회의소에 상표 등록해 공동체에서 생산한 멸치를 판매함으로써 남해정치망 멸치 홍보 및 공동체 소득증대에 앞장 서는 등 탁월한 실력을 발휘했다.

그에 대해 사람들은 이렇게 평가한다.
“그는 명실상부한 수산인으로서  위치를 확고히 하고 마을은 물론이고 남해군의 수산분야에 발생하는 모든 어려운 일들을 앞장서서 처리하는 등 탁월한 지도력과 자기를 희생해 가며  헌신적으로 노력함으로써 마을 사람들은 물론 남해군 전체 어업인들로부터 존경받는 모범적인 어촌 지도자다”
 그는 89년 6월부터 93년 6월까지 남해군 수협 이사로 재임하면서 어업인들의 권익보호와 불법어업근절에 앞장서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인정받아 남해군수로부터 공로패를 수여 받았다. 또 89년 1월부터 91년 12월까지 3년간 남해군 미조면 체육회장을 맡아 지역사회 체육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체육기반시설 확보 등 지역사회 체육발전에 이바지한 공이 인정되어 미조면민들로부터 공로패를 수여 받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그는 천직이 봉사자가 돼 버렸다.
  2005년 자원보호 및 어업인 소득증대를 위해 남해군 정치망 어업인 31명으로 남해정치망어업자율관리공동체를 결성해 그 공동체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그는 지난 10월 고창에서 열린 자율관리 전국대회에서 영예의 대통령 상을 수상했다. 그는 그날 대회가 있는 날도 연안에 큰 배들이 들어오면 안 된다며 기자에게 결의문을 전달하며 이를 막아 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왜 그가 오랫동안 어촌지도자로 남아 있는지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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